대항해시대가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던 1778년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은 태평양에서 대서양으로 통하는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나섰다가 알려지지 않은 섬들을 발견했다. 이전 스페인 탐험가들은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곳이었지만 그는 이 섬을 자신의 후원자 이름을 따 ‘샌드위치 제도’라고 불렀다. 옛 폴리네시아어로 ‘고향’이라는 뜻을 가진 하와이가 처음 서양에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1년 후 비극적인 최후를 맞기 전까지 쿡에게 하와이는 항해에 꼭 필요한 보급지이자 안락한 휴식처였지만 하와이의 어머니가 화산이고 지금도 여전히 어머니의 품 안에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하와이는 화산 활동의 결과로 탄생한 섬이다. 길이 5,800㎞, 폭 500㎞, 깊이 2,000㎞에 섭씨 1,500도의 마그마를 머금은 화산지대의 한가운데 존재하는 하와이에는 화산만 130여개, 활동 중인 곳도 4개나 된다. 불의 여신 ‘필레’가 산다는 전설을 지닌 ‘킬라우에아’는 이 중에서도 가장 위력적인 화산이다. 문헌상 화산 분출 기록은 220년 전부터 있었지만 주변 암석 등을 분석하면 연대는 22만~27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킬라우에아는 한 번 화를 내면 모든 것을 무자비하게 파괴한다. 1790년 대규모 폭발 때는 정상에서 불기둥이 약 9㎞ 높이까지 치솟고 수많은 용암을 뿜어내 본섬에 있던 전사들과 그 가족을 포함해 최대 5,000명 이상을 몰살시키는 참극을 일으켰다. 1840년에는 무려 26일 동안 폭발이 지속돼 2억~2억6,000만㎥나 되는 용암이 쏟아져 나와 주변을 초토화하기도 했다. 당시 화산 분출과 용암으로 발생한 화재는 밤에는 30㎞ 떨어진 곳에서도 글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강렬했다. 킬라우에아의 위력이 이토록 강력하다 보니 화산 활동이 감지될 때마다 섬 전체가 공포에 휩싸이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킬라우에아 화산이 ‘지상 낙원’ 하와이를 다시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지난 4일 오전 규모 6.9의 강진이 발생한 후 화산 주변에 균열이 생기고 용암 분출구가 확대되면서 흘러내린 용암으로 가옥 26채가 파손되고 주민과 관광객 4,000여명이 대피했다. 아직 분출할 수 있는 용암이 있을 수 있어 피해가 더 늘어날지 모른다니 걱정이다.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 인간은 역시 한없이 작을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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