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77) 전 대통령 측이 검찰 증거에 모두 동의한다는 뜻을 밝혔다.
110억원대 뇌물수수와 350억원대 다스 횡령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 전 대통령 측은 지난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사실상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진술조서를 비롯한 각종 증거를 재판에 쓰는데 동의한 배경이 무엇일지에 관심이 주목된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에 검찰 측 증거에 대한 인부서를 제출했다. 인부서는 증거를 인정 혹은 부인하는지에 관한 의견서다. 변호인단은 인부서에 “모든 증거를 동의하고 입증 취지를 부인한다”는 뜻을 전했다. 이는, 증거 자체는 인정하지만 이 전 대통령의 무죄를 주장하는 근거 자료로서 사용하겠다는 의미다.
이 전 대통령 측은 “변호인은 증거를 동의하지 말자고 주장했지만 대통령께서 반대하셨다”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변호인단에 “증인 대부분이 함께 일해 온 사람들이고 검찰에서 진술을 한 이유가 있을 텐데 그들을 법정에 불러 거짓말 여부를 따지는 것이 금도(襟度)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전 대통령은 이어 “그런 모습을 국민께 보이는 것도 옳지 않으니 변호인 측에서 객관적 물증과 법리로 싸워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대통령 측 관계자는 “이 전 대통령께서 본인의 뜻을 강조하셔서 그에 따르기로 했다”며 “다만 죄를 인정한다는 취지는 아니다. 공소사실에 대한 의견 모두 부인하는 취지로 의견서를 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금융 자료 추적 결과나 청와대 출입 기록 등 객관적인 자료로 검찰 주장을 반박할 계획”이라며 “필요한 증인신청을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서류 증거들에 대한 조사를 중심으로 심리가 이뤄지는 탓에 이 전 대통령 측이 검찰 측 증거에 모두 동의하면서 심리는 빠르게 진행될 전망이다. 보통 피고인 측이 검찰의 진술조서와 같은 증거를 부동의하면, 해당 진술을 한 사람들을 법정에 증인으로 불러 직접 진술을 듣는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 측이 진술조서까지 한꺼번에 동의한 만큼 증인 신문 절차는 대폭 축소된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혐의를 강하게 부인한 피고인이 검찰 증거를 모두 동의하는건 극히 이례적‘이라며 “검찰 증거에 동의했을 때와 증인들을 모두 법정에 불렀을 때의 유불리를 따졌을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등 검찰 수사에 협조한 인사들을 법정에 부르는 것이 이 전 대통령에게 유리할 게 없다는 계산이었을 거란 의미다.
이 전 대통령의 2차 공판준비기일은 10일 오후에 열린다.
/이서영인턴기자 shy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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