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다녀온 비행기들은 어제 오늘 모두 승무원들이 모자랐습니다. 팀장님은 ‘비행 잘 다녀오는 게 우리 임무니까 그것만 잘 하자’고 했는데요. 저는 인턴승무원이 직장을 잃고 임금이 2년제로 떨어지는 이 상황에서 언제까지나 ‘알겠습니다’라고만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행동하지 않으면 바뀌는 것이 없습니다.”
부슬비가 내리는 12일 오후 7시 30분 서울역 광장. 가이포크스 가면에 승무원 제복을 입은 한 대한항공 직원이 무대에 서서 외쳤다. 이 직원은 대한항공이 수년 째 객실승무원들 채용과 임금을 갈수록 줄이고 있는 상황이라며 노조원들의 권리 옹호를 호소했다. 비옷을 입고 우산을 쓴 500여명의 시민들과 대한항공 직원들은 ‘조양호 OUT’, ‘우리가 지켜낸다 대항항공’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직원의 말에 환호했다. 지난 1차 촛불집회 때와 달리 제복을 갖춰 입고 대한항공 직원임을 드러내는 참가자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대한항공 임직원들은 정부의 필수공익사업장 지정을 철회하고 노조를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운항승무원 제복을 입은 한 대한항공 직원은 “지난번 파업 때도 사측은 필수공익사업장이라는 명목을 방패 삼아 일부 화물선을 제외한 전 노선을 정상 운영했다”며 “노조가 파업을 해도 회사에 아무 영향이 없으면 노사 간 균형이 깨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가이포크스 가면을 쓴 또 다른 운항승무원도 “노조가 힘이 없어 이렇게 가면을 쓰고 나오는 사실이 서글프다”며 “갑질로 비난받는 대한항공이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된 건 지나친 특혜”라고 전했다.
인하대학교 동문들도 집회에 참석해 지지 발언을 이어갔다. 인하대 동문협의회에서 나왔다는 이혁재(47)씨는 “인하대 총장은 지난해 대학생들 등록금으로 모은 130억을 한진해운에 투자하게 했고 인하대 이사는 조중훈과 조현아를 거쳐 조원태까지 3대 세습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조현아 전 부사장이 이사로 재직하던 시절 총장에게 서류를 던져 모욕을 줬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이날 집회에는 재벌개혁을 촉구하는 시민들도 참가했다. 전북 군산에서 기차를 타고 왔다는 신권웅(62)씨는 “조양호 재벌 적폐를 청산하려면 시민들도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며 “지난 번 촛불집회에도 참가했고 앞으로도 참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학생 안지영(23)씨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질을 몰아내려면 힘이 필요할 것 같아 집회를 찾았다”고 전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땅콩 모양의 박을 터트리며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약 2시간 가량 집회를 이어갔다.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갑질 의혹은 지난달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이 계기가 돼 알려졌다. 조 전 전무는 지난달 광고대행사 직원을 질책하는 과정에서 물컵을 던진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다. 조 전무의 어머니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은 지난 2014년 인천 그랜드하얏트호텔 공사장에서 직원들을 밀치고 서류를 던진 혐의(폭행)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으며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조중훈 전 회장의 유산 상속을 신고하지 않은 혐의(조세 포탈)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은 지난 2014년 마카다미아 땅콩 뜯는 법이 잘못됐다며 비행기를 회항하라고 지시했다가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신다은기자 downy@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