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과 극우동맹이 연정협상을 타결하면서 이탈리아 정치사상 ‘최악의 연정’ 탄생이 눈앞에 다가왔다. 연정 합의안이 대통령 승인을 받게 되면 이탈리아는 물론 서유럽 사상 최초의 포퓰리즘 정권이 탄생하게 된다. 이탈리아 포퓰리즘계의 원조 격인 동맹과 신흥 강자인 오성운동이 구성할 새 정부는 유럽연합(EU)의 재정적자 규제, 난민정책에 반발할 가능성이 높아 유럽은 물론 세계 금융시장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탈리아 AGI통신은 오성운동과 동맹이 13일(현지시간) 연정 구성에 포괄적으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양당은 조만간 총리 지명자, 정책 등 연정 합의안을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총리 후보로는 루이지 디마이오 오성운동 대표와 마테오 살비니 동맹 대표 모두를 제외한 중립적 인사가 내정될 것으로 알려졌다. 연정의 세부 정책안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살비니 대표가 “감세와 복지 확대, 불법이민 중단에 동의했다”고 말해 재정확장안 등 EU에 반하는 정책이 대거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가능성이 낮아 보였던 오성운동과 동맹 간 연정이 급물살을 탄 것은 지난 3월 총선 승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데서 이해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포퓰리즘을 이유로 오성운동과의 연대를 거부했고 오성운동은 ‘부패 정치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우파연합과의 연정에 난색을 표했다. 그러다 정치불안 장기화를 우려한 마타렐라 대통령이 7일 정치인 이외의 인물을 총리로 지명하는 중립내각을 제안하자 살비니 대표가 우파연합과 선을 긋고 디마이오 대표와 연정 협상을 시작했다. 오성운동과 동맹의 하원의석 수는 각각 229석, 124석으로 합치면 과반인 315석을 넘긴다.
전문가들은 오성운동과 동맹 간 연정을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평가해왔다. ‘북부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동맹은 부유한 공업지대인 북부 주가 낙후 농업지대인 남부의 재정을 부담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북부 이탈리아의 독립을 주장해온 정당이며 2009년 창당된 오성운동은 EU 등 기존 정치체제와의 단절을 주장한다. 외신들은 “양당은 포퓰리즘 정책을 위해 언제든 EU의 규제를 공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외신들은 특히 연정안에 오성운동이 주장해온 기본소득제와 동맹의 단일소득세 정책이 포함된 점에 주목하며 향후 이탈리아의 재정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양당이 모두 공약한 연금개혁안 폐기 역시 재정불안의 주요인으로 꼽힌다. 2011년 남유럽 재정위기 당시 도입된 연금개혁안은 재정 건전성 담보를 위한 연금 수령연령 상향 등을 골자로 하는데 이를 폐기하려면 연간 200억유로의 재원이 추가로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새 정부가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할 경우 이탈리아에 그리스 구제금융 사태보다 심각한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이탈리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누적 정부적자는 지난해 131.8%로 그리스 다음으로 높았다. 금융권의 부실채권도 2016년 말 1,260억유로에 달해 언제 EU에 손을 벌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3위 경제대국의 구제금융 사태가 현실화할 경우 그 파장은 그리스와 비교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두 정당 모두 EU의 난민정책을 정면 거부해 반난민정서가 유럽 각국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다만 연정 합의가 ‘찻잔 속 태풍’에 그칠 수도 있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12일 “오성운동과 동맹의 (연정) 협상안을 무조건 받아들일 의무는 없다”고 말해 합의안 수정을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로이터통신은 “지나치게 급진적인 정책이 발표되지 않는 한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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