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블룸버그에 실린 칼럼이다. 북한 경제가 개방되면 매력적인 북한 근로자들의 낮은 임금 때문에 삼성전자와 같은 한국 기업들이 투자처를 기꺼이 북한으로 옮길 것으로 보인다는 낙관적 견해다. 지난달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 직후 상당수 국내 기업들이 보인 기대감과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불과 며칠 만에 주요 외신에서 이 같은 장밋빛 전망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대신 그 자리를 남북 정상회담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과 다음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예정인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회의론이 대체하고 있다.
4월27일 판문점에서 만난 남북 정상의 모습은 자체로 예상을 뛰어넘는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문 대통령과 만난 김 위원장이 이날 보인 행보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전 북한 지도자에서는 볼 수 없었던 파격 그 자체였다. 당연히 국민들은 들떴고 1953년 휴전 이후 65년간 계속된 남북 간 대치 상태가 끝나고 당장이라도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릴 것 같은 기대감에 젖었다. 말로만 듣던 개마고원에서 여름휴가를 즐기고 겨울 휴가를 마식령 스키장에서 보내는 상상이 당장이라도 현실이 될 것 같았다.
남북관계가 갑자기 얼어붙은 것은 16일로 예정됐던 남북 고위급회담을 이날 새벽 갑자기 일방 취소한 때부터다. 이후에도 북한은 오히려 남북관계 회복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 분위기다. 당초 대외적으로 약속했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의 우리 측 취재진의 방북도 우여곡절 끝에 23일에야 겨우 성사됐다. 심지어 최근에는 탈북한 중국 소재 북한식당 여종업원들의 송환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이렇다 보니 더욱 궁금해지는 것이 이달 7~8일 이틀간 중국 다롄을 전격 방문한 김 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나눈 대화 내용이다. 잘 알다시피 다롄은 중국 동북 지역의 주요 공업 지역이다. 북중 정상 간에 경제협력과 관련된 구체적인 대화가 오갔음을 충분히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가 우리를 더욱 당황스럽게 만드는 것은 단순히 남북관계의 경색을 넘어서 또다시 불거지는 ‘코리아 패싱’ 우려다.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해 제기됐던 ‘차이나 패싱’은 사라지고 이제는 한국이 중국에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협상 테이블 의자를 빼앗긴 것이 아니냐는 우려마저 든다.
그런데 이는 기자만의 걱정은 아니었던 것 같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증권사 임원은 최근 돌변한 북한의 태도에 대한 증권가의 분석을 들려줬다. “남북 정상회담 직후 이른바 대북 경협 테마주가 상승했지만 같은 기간 중국 증시의 관련주 역시 큰 폭의 오름세를 보였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북한 개방의 실질적 혜택은 한국 기업이 아닌 중국 기업의 몫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경협의 최대 수혜자로 거론되는 건설업계의 속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북한 인프라 투자가 말처럼 간단한 것이 아니다”라며 “내부적으로 태스크포스(TF)를 꾸린 업체도 거의 없다”며 세간의 관심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남북한 정상이 서로 손을 맞잡은 채 군사분계선을 남북으로 오가고 다리를 산책하고 테이블에 마주앉아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자체로 파격이고 감동이다. 하지만 감동은 거기까지다. 여전히 우리는 북한이 도대체 몇 기의 핵무기를 갖고 있는지조차 정확히 모른다. 그저 카드판에서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한두 장의 카드만 보고 나머지 패를 예상하고 베팅하는 식이다.
다음달 13일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교육감 선거에서 서울시의 진보 교육감 후보들은 개마고원 수학여행까지 공약으로 내걸었다고 한다.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학생들이 개마고원 수학여행길에서 내는 고속도로 톨게이트비와 휴게소 식당에서 내는 점심값, 개마고원 입장료, 부모님께 드릴 기념품 값이 고스란히 왕서방의 전대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닐 것 같다.
dhchung@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