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선언의 화해 분위기는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판 깨기로 전환됐다. 북한의 판 깨기는 수세적 국면을 공세적 국면으로 전환하기 위한 의도된 기획물이다. 물론 의도된 기획은 북한이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기선 제압(outmaneuvering)으로 유리한 협상 결과를 얻기 위해 자주 활용하던 전술이다. 판문점 선언 후 3주 만에 한국과 미국을 향한 북한의 판 깨기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을 향해 정례적 한미 연합훈련인 맥스 선더 훈련과 태영호 전 주영 북한공사의 자서전 ‘3층 서기실의 암호’ 발간을 빌미로 지난 16일로 예정됐던 남북 고위급회담을 일방적으로 연기하고 23~25일로 예정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이벤트 참관에 대한 한국 기자의 입북에 몽니를 부리다가 뒤늦게 허용하는 촌극도 연출했다. 그리고 미국에 대해 “일방적인 핵 포기만 강요하려고 하면 북미 정상회담에 응할지 재고려할 것”이라면서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고 나섰다.
북한의 판 깨기에도 미국은 일관된 기조로 대응하고 있다. 23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일괄타결(all-in one) 방식의 비핵화를 재확인했다. 그리고 미국은 ‘특정 조건이 충족’돼야만 회담 개최가 가능하다는 입장도 처음으로 언급했다. 물론 미국은 북한이 CVID 수용시 ‘체제 안전보장과 경제적 지원을 통한 번영’이라는 당근을 제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또 미국은 북중 간 신밀월에 대해 CVID의 장애로 인식하고 있다.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돌변한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두 차례의 중국 방문을 통해 중국이 북한의 확실한 후원국 역할을 하는 것을 확인한 후부터다. 특히 7~8일 김 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다롄 회동 후 북한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진 점을 주목하고 있다. 이후 북한은 단계적 비핵화를 강조하고 회담 개최 재고의 가능성을 언급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북중 밀월 관계의 징후로 북한으로의 원유 공급 증가와 북한 여성근로자의 중국 이동 정황이 감지됐다. 이는 최대의 압박으로 CVID의 목표를 달성하려는 경로에 많은 구멍(porous)이 생겼다는 의미다. 물론 중국은 이를 부인하지만 엄연히 유엔 안보리 제재 위반이다.
북한의 여섯 차례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시험, 2018년 신년사와 4월20일 노동당 전원회의 결정에서 핵심기조는 ‘국가 핵무력 완성’을 고정불변의 상수로 두고 핵협상 전략을 구사한다는 점이다. 즉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지만 핵을 없애는 시늉으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완화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북한은 미북 정상회담에서 CVID가 아니라 ‘충분한 비핵화(SVID)’로 미국을 속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실 북한이 지속적으로 단계적 비핵화를 주장하는 저의는 SVID를 관철하기 위한 전술 때문이다. 북한이 판문점 선언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핵 없는 한반도’에 동의했지만 북한은 ‘핵 없는 한반도’에 방점을 두고 있다. 핵 없는 한반도는 한(조선)반도 비핵지대화(nuclear free zone)를 의미한다. 이는 북한이 SVID로 ‘국가 핵 보유’를 정당화하려는 의도라는 점을 직시해야만 한다.
우리 국민의 대다수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2030세대를 대상으로 북핵 포기에 대해 여론조사한 결과 92%는 ‘포기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따라서 이번 미북 정상회담은 북핵 폐기(CVID)를 실현하는 역사적 회담이 되도록 해야 한다. 물론 폐기 절차는 일괄타결 방식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단계적 SVID는 ‘핵 있는 위장 평화’라는 점에서 일괄타결의 CVID만이 ‘핵 없는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또 북핵 폐기가 확인되기 전에는 압박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할 수 있고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번영의 토대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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