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아이콘’이자 영화 ‘아이언맨’의 실제 모델로 불리는 일론 머스크가 최근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자신이 꾸리고 있는 기업의 성과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밴든버그 공군기지에서는 스페이스X의 팰컨 9 로켓이 발사됐다. 이는 지난 11일 플로리다주 케이프 커내버럴의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팰컨9의 최신 버전인 ‘블록5’을 쏘아 올린 후 11일 만에 발사에 성공한 것이다. 머스크는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X, 전기차업체 테슬라, 터널프로젝트회사 보어링컴퍼니의 최고경영자(CEO)다.
팰컨9의 발사가 의미 있는 것은 이를 통해 우주여행 사업의 핵심인 로켓 재활용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기존 로켓들은 한 차례만 재활용했지만 이번 버전의 경우 최소 10번 이상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고안됐다. 머스크의 이상이 실현될 경우 로켓을 재활용해 왕복 우주여행을 할 길이 열리는 셈이다.
앞서 머스크는 지난 2월 6일 세계 최대 적재량 수송능력을 갖춘 초대형 로켓 팰컨헤비의 시험발사에 성공하며 우주개발업체 가운데 최강자임을 전 세계에 알렸다. 당시 외신들은 스페이스X가 우주산업의 신기원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강력한 추진력을 갖고 회수 가능한 로켓이 상용화될 경우 상상에서만 가능하던 화성여행이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팰컨헤비는 높이 70m, 폭 12.2m 크기로 팰컨9 로켓 3개를 묶어 총 27개의 엔진을 장착했으며 추진력은 보잉747여객기 18대를 합쳐놓은 것과 맞먹을 정도로 역사상 가장 강력한 화력을 자랑한다. 탑재 가능한 총 중량은 64톤에 달한다. 이날 팰컨헤비에는 머스크의 계획대로 테슬라의 체리색 스포츠카 ‘로드스터’가 실렸으며 운전석에는 우주복을 착용한 마네킹 ‘스타맨’이 앉았다.
하지만 우주를 향해 도약하는 스페이스X와는 달리 그가 경영 중인 미국 최대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덜컹거리는 운행을 하고 있다.
이달 초 테슬라는 1분기 실적발표를 통해 8억달러(8,628억원)의 손실을 보며 6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테슬라는 올 1·4분기에 현금 7억4,500만 달러를 쏟아부었다. 테슬라가 전진을 못 하는 이유는 보급형 전기차 ‘모델3’가 생산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머스크 CEO가 지난해 말까지 보급형 전기차 ‘모델3’를 주당 5,000대 출하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생산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일정은 올 3월에 이어 6월로 2차례 연기됐다. 또 최근에는 회계최고책임자(CAO)가 최근 회사를 떠나고 볼트 부식 문제로 기존 출시된 ‘모델S’ 12만3,000대를 리콜하며 테슬라는 겹악재를 맞았다. 헤지펀드 빌라스 캐피털매니지먼트는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테슬라가 4개월 내 파산할 것이라는 극단적 전망을 하기도 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회사의 재정적자를 메워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모델3의 생산계획이 틀어지면서 테슬라는 현금이 바닥날 위험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17일 테슬라가 생존하려면 2년 안에 100억달러(10조8,000억원)의 재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 데이비드 탬베리노는 “테슬라는 2020년까지 회사 운영을 위해 100억 달러의 추가 재원이 필요할 것”이라며 “이런 수준의 자금 조달은 새로운 채권이나 전환사채·주식 발행 등 복수의 경로를 통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템베리노는 테슬라 주가가 향후 6개월간 31% 떨어진 195달러선까지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머스크 스스로 분란을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머스크는 지난 3일 테슬라의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현금고갈로 수십억 달러의 빚을 내야 할 상황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지루하고 멍청한 질문은 쿨하지 못하다”며 기이한 언행을 했다. 이날 그의 발언 이후 주가는 284.45달러로 전날보다 5.5% 하락했다. 지난해 9월 389.61달러로 고점을 찍었을 때와 비교하면 7개월여 만에 시가총액의 4분의 1이 날아간 셈이다. 24일(현지시간) 테슬라의 주가는 277.85달러까지 추락한 상태다. CNN머니는 “머스크가 월가와 관계를 끊어버릴 시기를 잘못 골랐다”며 “그는 룰을 따르지 않는 대담한 리더라는 평가로 유명하지만, 회사의 큰 꿈에 자금을 대줄 자본시장으로부터 외면받을 위험을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3월에는 테슬라의 전기차 ‘모델X’ 운전자가 자율주행 중 사망하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38세 남성이 ‘모델X’를 운전하다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사망했는데 당시 자율주행 모드가 작동 중인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실적압박에 스트레스를 받아온 머스크는 최근 언론을 대상으로 한 분풀이를 시작했다. 그는 23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대중이 기사의 진위와 일정 기간에 걸쳐 기자와 편집인 개개인과 매체의 신용도를 평가할 수 있는 사이트를 개설할 것”이라며 이 사이트의 이름을 ‘프라브다’(Pravda)라고 명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당신이 언론인이고 프라브다가 존재하지 않길 원한다면 기사를 써서 당신의 독자가 반대표를 누르게 하라”고 강조했다. 프라브다는 러시아어로 ‘진실’을 의미하며 공교롭게도 구소련 공산당 기관지의 명칭이기도 하다.
머스크가 언론 평가 사이트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은 이번 주 초 탐사보도 전문 비영리 매체 ‘리빌’(Reveal)이 테슬라 생산공장의 안전 문제를 고발하는 기사를 보도한 이후 나왔다. 만우절에 농담으로 가짜 뉴스를 트윗하기도 한 머스크이지만 그의 이런 계획이 사실이라면 손쉽게 조작 가능한 온라인 인기투표를 통해 기자와 언론 매체의 평판이 결정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언론자유 옹호 단체인 ‘프리 프레스’의 티머시 카는 “우리가 절대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은 자신과 같은 의견이 아닌 기자들의 입을 막겠다고 위협하는 돈 많고 힘 있는 또 다른 남성”이라고 비판했다.
/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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