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을 밀어붙이겠다고 나선 만큼 재정의 역할은 어느 정도 예고됐던 사안이다. 저소득층 지원 등 양극화 현상 해소나 청년 일자리 창출 같은 당면과제를 해결하자면 일종의 마중물로서 재정을 동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당정청 수뇌부가 모두 모여 국가재정운용의 큰 방향과 전략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한가지 얘기만 들리고 이에 따른 부작용을 지적한 사람이 없었다는 점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문 대통령 역시 “과감한 지출 구조조정을 위해 각 부처 장관들이 적극 협력해달라”고 말해 확대재정은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일각에서 이날 회의 결과를 반영하면 내년 국가예산이 무려 460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판국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돈을 쓰는 데만 골몰할 뿐 재원조달이나 성장전략 마련은 뒷전이라는 점이다. 최근 국세가 당초 계획보다 더 걷혀 때아닌 세수 풍년을 맞고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해서 나랏돈을 풀어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높이고 미래 산업을 키우는 게 아니라 저소득층에게 돈을 쥐어주는 수준에 그친다면 단기 효과에 머무를 뿐 재정부담만 가중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과감한 규제완화와 신성장동력 창출을 통해 재정기반을 확충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러잖아도 유럽발 금융위기 여파로 세계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경제의 마지막 보루인 건실한 재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정부는 이제라도 방만한 재정투입의 유혹에서 벗어나 고강도의 재정개혁과 함께 구조개혁에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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