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짜릿한 순간...‘축구’ ‘영화’ 와 함께
영화 ‘독전’으로 배우 류준열의 연기 인생 2막이 열렸다. ‘독전’은 인간 류준열의 모든 것은 아닐지라도, 배우 류준열의 최대치가 담긴 영화다.
영화인 류준열과의 인터뷰는 분명 이전과는 달랐다. 연기의 맛을 제대로 즐기고 있는 배우의 모습을 보는 건 관객에게도 취재진에게도 행복감으로 찾아왔기 때문이다.
지난 22일 개봉한 영화 ‘독전’(감독 이해영)은 아시아를 지배하는 유령 마약 조직의 실체를 두고 펼쳐지는 독한 자들의 전쟁을 그린 범죄극이다. 조진웅, 류준열, 김성령, 박해준, 故김주혁, 차승원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들의 강렬한 연기가 시너지를 이끌어낸다.
류준열은 이번 영화에서 조직으로부터 버림받은 연락책 ‘락’으로 분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인물인 ‘락’ 역의 류준열은 “무표정하지만 내면에 소용돌이치고 있는 감정은 무엇일까 하는 부분을 고민하며 연기에 임했다”라고 전하며, 절제되었지만 그 내면에는 다양한 감정을 가진 인물 ‘락’을 표현하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을 거듭했다고 했다.
‘락’에게 중요한 건 반전이 아닌 ‘외로움과 싸우는 일’이었다. 더 나아가 ‘락’이란 인물과 가까워지게 노력한 배우 류준열에게 중요한 건 “이 인물이 진짜 궁금해하고, 본인이 해소해야 될 게 무엇인지를 고민 하는 것”이었다.
“보통은 주어진 전사를 놓고 디테일을 찾아서 인물을 만들어놓고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다면, ‘락’의 경우는 자신을 찾아가야 했다. 전사가 전혀 없는 게 전사였다. 어떤 사람인지 이미 정해져 있는 게 아닌, 촬영하면서 묻고 갔다. 그 속에서 나 스스로 누구인지 궁금해지더라.”
‘락이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은 곧 ‘류준열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자신을 끊임없이 숨기고 반추하는 인물 ‘락’은 그렇게 류준열의 인생에 잔잔하지만 커다란 파동을 이끌어냈다.
“‘’락‘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고민하느라 혼자 묻고 답하는 과정이 계속 반복됐어요. 그러다 보니 ‘류준열은 누구인가?’와 같은 고민도 하게 됐어요. 결국 ‘나는 누구일까?’라는 생각을 품은 채 연기하게 됐죠. 그러다보니 감정에 충실한 연기를 해야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독전’ 현장에서 잊을 수 없었던 게, 좋은 감정이 나오면 바로 OK가, 감정이 흐트러지면 NG 소리가 나왔던 점이죠. 처음엔 이해영 감독의 OK 사인을 그대로 안 받아들이고 ‘절 놀리시나’ 란 생각에 왜 빨리 OK하시지? 스스로에게 의심을 갖기도 했어요. 그런데 점점 제가 느낀 감정과 똑같이 사인을 주셔서, 마치 복권 맞은 기분이 들던걸요.”
자신을 끊임없이 숨기고 반추하는 ‘락’과 실체 없는 조직을 잡기 위해 모든 것을 건 미친 형사 ‘원호’(조진웅)은 끝을 알 수 없는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락’이 원호를 보고, ‘어쩌면 이 사람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듯, 류준열은 조진웅에게서 그 이상을 느꼈다고 했다.
“조진웅 선배님과 눈빛과 감정을 주고받으면서 통했다 싶으면 OK소리가 났고, 조금이라도 서로의 얼굴에서 미진한 게 느껴지면 NG 소리가 들리더라. 그런 과정이 짜릿하기도 하고, 이 맛에 연기하는구나 싶었다. ”
류준열은 2015년 tvN ‘응답하라 1988’로 이름을 알렸고, 현재는 충무로 대세 배우로 활약 중이다. 지난 해 영화 ‘택시운전사’ ‘침묵’에 이어 올해 ‘리틀 포레스트’와 이번 ‘독전’까지 다양한 영화로 대중과 만나고 있다.
류준열은 ‘독전’을 통해 연기의 새로운 재미를 느꼈고, 연기관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연기 자체에만 올인하는 것이 아닌, 영화를 찍고 나서 동료들과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음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 행복을 알게 된 것.
기자가 “영화인과 인터뷰 하고 있는 느낌이다”고 건네니, 눈을 동그랗게 뜬 류준열은 “놀리시는 거 아니죠?”라고 되묻더니 “감사합니다”며 뿌듯한 미소를 보였다.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영화 ‘돈’을 찍으면서 조금씩 느꼈던 것 같아요. 사람들과 어울리고, 영화 찍고 그러면서 사람들을 진심을 듣고 느끼다보니까 행복했어요. ‘아! 이런 재미로 영화를 찍는구나’란 생각도 들었죠. ‘독전’을 찍으면서 제대로 느끼기 시작했고, ‘뺑반’을 찍으면서 또 느꼈어요. 어떤 선배는 촬영 끝나고 다른 배우들과 맥주 한 잔 하는 맛에 영화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그런 비슷한 맛을 느끼고 있는 걸까요?”
류준열이 느낀 ‘영화의 맛’은 퇴근 후 마시는 생맥주 한잔 보다 짜릿했고, 노을 지는 석양을 친구와 함께 바라보는 감흥 이상으로 깊었다. 그렇게 류준열의 배우 인생은 한뼘 성장했다.
“배우로서 특별히 성장했다기보다 연기의 본질에 대한 재미를 느낀 건 분명한 것 같아요. 최근 연달아 영화를 찍으면서 깨달은 게 하나가 ‘사는 게 재미있다’ 였어요. 이전엔 ‘배우로서 잘 해야 하는데’ ‘영화가 잘 돼야 하는데’ 란 마음이 컸다면, 이젠 영화를 찍는 순간만이 아닌 그 과정들의 진심이 보이더라구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영화가 잘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배우란 직업을 즐겨야 하는 거잖아요. 영화에 대한 고민도 함께 나누고 밥도 먹고, 맥주도 한잔 하면서 다음에 뭐 찍을까요?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어요. 재미가 거창한 게 아니잖아요. 이렇게 마음이 통하는 분들과 영화를 찍고 관객들을 만나고, 또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것..그런게 배우 인생이구나란 생각이요. 그런 재미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좋은 배우가 돼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천천히 들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일을 하고 있는 게 즐거워요. 삶의 활력소인 축구도 그렇지만 삶의 짜릿한 순간이 많은 건 좋은 것 같아요. 하하하.“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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