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세계수출시장 점유율도 역대 최대를 기록했으며 주요 수출국 가운데 수출액이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고 수출 순위도 6위로 전년에 비해 두 계단 올랐다.
그러나 지난달 한국경제학회와 한국금융학회가 공동개최한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한국경제의 회고와 전망’ 심포지엄에서 한 발표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의 확장국면에서 수출산업 경쟁력을 기반으로 빠른 성장세를 보였던 한국경제의 역동성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그 근거로 수출증가율이 세계교역량 증가율보다 높았던 추세가 지난 2014년부터 역전됐고 반도체를 제외한 나머지 수출산업이 글로벌 경제의 성장랠리에도 불구하고 견실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명목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수출액 비중은 지난해 43.1%로 전년 전보다 증가했다. 그러나 지난해 3.1% 경제성장에 대한 수출기여도는 0.8%포인트에 불과, 전년 1.2%포인트(성장률 2.9%)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언뜻 납득하기 어려운 통계치는 1,000억달러에 이르는 반도체 수출 호황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무역협회 산하 국제무역연구원의 한 보고서(2017년 우리 수출의 호조요인분석)는 수출산업의 현주소를 좀 더 상세히 보여준다. 이 보고서는 중국,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주요 교역국 수출액을 해당 지역의 경제활동에 의존한 수입수요 요인, 산업구조 및 수요변화에 따른 상품구성 요인과 시장점유율 변동에 따른 경쟁력 요인으로 분해했다.
단일지역으로 1·2위의 수출시장인 중국과 미국만을 놓고 볼 때 수출이 증가한 것은 수요 요인에서 비롯한 것이며 경쟁력 요인과 상품구성 요인은 모두 감소했다. 즉 지난해 중국·미국에 대한 수출이 늘어난 것은 전적으로 이들 나라의 경제가 호전돼 수입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점유율은 하락했고 양국의 수입구조도 우리 수출품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났다. 두 시장에서 점유율이 줄어드는 현상은 2년 연속 관측됐다. 대신 경쟁국의 점유율은 증가했는데 중국에서는 미국과 독일, 미국에서는 중국과 독일의 약진이 눈에 띈다.
수출품목별로 볼 때 무엇보다도 자동차와 휴대폰이 양국 수출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만이 중국시장의 모든 부문에서 크게 선전했다.
이 보고서는 지난해 사상 최대의 수출에도 불구하고 반도체를 제외한 수출산업이 부진한 것은 취약한 수출산업의 경쟁력과 유연하지 못한 산업구조 전환에 있음을 시사한다. 요컨대 반도체를 제외한 수출산업의 생산성이 경쟁국에 비해 낙후된 것이다.
이 보고서는 국내에서 생산한 수출만을 고려했다. 해외법인의 수출은 제외한 것이다. 이 보고서가 우리 수출산업의 현황을 정확히 분석한 것이라면 수출기업의 해외직접투자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2006년부터 크게 늘어난 우리 기업의 해외직접투자는 지난해까지 연평균 GDP 대비 2.1%에 달했다. 한편 같은 기간 동안 외국 기업의 국내직접투자는 0.8%에 불과했다. 해외직접투자가 늘어날 때 그만큼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미중 무역갈등이 재연될 조짐을 보인다. 이 갈등은 미래 양국 산업 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데 근인(根因)이 있다. 현재 독일의 산업 4.0, 중국의 중국제조(中國製造) 2025, 일본의 소사이어티 5.0 등 주요 산업국 정부는 기술혁명을 자국의 산업고도화로 활용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크게 증가하고 있는 반도체 수출이 산업고도화가 현재진행형임을 증명한다.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도 같은 목적에서 추진하고 있다. 평생 혁신에 헌신했던 미국 경제학자 고(故) 윌리엄 보멀 교수는 혁신의 조건으로 비즈니스를 하기 쉽고, 재산권과 계약권이 보호되며, 경제의 파이를 키우는 활동이 촉진되고, 우량기업이 혁신하고 성장할 동기를 가지는 것으로 보았다. 정부가 귀담아들어야 할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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