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을 돌이켜보면 동네마다 만화방이 하나씩은 있었다. 만화방은 보통 상가 건물 지하에 있었는데 당시 흔하지 않던 TV도 공짜로 볼 수 있고 상냥한 주인아줌마가 라면도 끓여주는, 만화책이 가득한 보물창고나 다름없었다.
놀 거리가 귀하던 시절이라 만화는 지갑이 얇은 청춘이 쉽게 향유할 수 있었던 콘텐츠였다. 한 달에 한 번 나오는 ‘보물섬’ 같은 월간 만화 잡지를 친구들과 함께 돌려보고 당시 인기였던 이현세 작가의 ‘공포의 외인구단’을 읽으며 소년의 꿈을 꾸기도 했다. 이렇듯 6070 세대에게 만화는 추억이고 향수이자 젊음이었고 힘든 현실에서의 도피처였다.
그러나 지금은 만화를 향유하는 세태가 달라졌다. ‘향유’라는 말보다는 ‘소비’라는 말이 더 어울리게 됐다. 스마트폰으로 아무 때나, 아주 쉽게 만화를 보고 심지어 소비를 위한 돈을 낼 필요가 없어졌다. 물론 최근에는 온라인 웹툰 플랫폼들을 필두로 유료 서비스가 대세가 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때 그 시절의 만화와 비교할 수 없다. 그 시절의 만화는 사회악이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있었음에도 40~50년이 지난 지금에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문화적 힘과 무게감이 있다.
흔히들 만화나 웹툰을 ‘스낵컬처’라고들 표현한다. 언제 어디서든 과자처럼 가볍게 소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특성은 웹툰의 가장 큰 장점이자 약점일 수 있다. 가벼운 만큼 문화·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문화콘텐츠는 향유 과정 동안의 경험을 즐기기 위한 경험재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소비자 스스로가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이 콘텐츠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래서 필자는 웹툰의 문화콘텐츠적 가치 상승을 위해서는 ‘소비’가 아닌 ‘향유’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웹툰의 향유 가치를 어떻게 높여야 할까. 우선 한국을 대표할 만한 스타콘텐츠의 메이킹이 필요하다. 일본 만화 ‘원피스’, 핀란드 캐릭터 ‘무민’이 국가를 대표하는 만화콘텐츠가 됐듯이 한국도 세계적인 스타콘텐츠를 만들어내야 한다. 스타콘텐츠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 등으로의 영역 확장을 통해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함과 동시에 독자들 사이에 공감대와 유대관계를 만들어 한국 만화·웹툰의 가치를 혁신할 수 있다.
만화 향유를 위한 부가적인 문화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만화축제·페어·콘퍼런스 등의 운영 및 만화 비평의 활성화를 위한 노력은 만화·웹툰콘텐츠에 ‘스낵’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는 요소가 된다.
한국을 대표할 스타 만화콘텐츠의 탄생, 그리고 이를 전 세계인이 향유할 수 있게 하는 부가적인 문화적 인프라의 조성을 통해 한국 만화·웹툰 콘텐츠를 단순 ‘소비’가 아닌 ‘향유’할 수 있는 내일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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