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6월12일에 열릴 것 같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일 북한 특사인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극진히 환대하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강한 신뢰를 표시했다.
비핵화 협상은 일괄 타결될 것이다. 하지만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하려면 물리적인 시간이 최소 2년에서 길게는 15년 이상이 걸린다. 당연히 비핵화 실행은 단계적이며 순차적이다.
존 볼턴 안보보좌관 등 네오콘 출신 대북 강경파들은 모든 비핵화 과정이 다 끝날 때까지 대북제재를 절대 풀지 말고 대북 압박의 끈을 놓지 말자고 주장해왔다. 더 나아가 생화학무기 등 국가의 존립 토대 중 하나인 군사력 일부를 사실상 무장 해제하라고 강요했다.
이를 받아들일 ‘정상 국가’가 있을까. 만약 대한민국이 과거 중공과 수교를 할 때 한국전쟁 때 적국이었다는 이유로 상당 부분 군사력을 포기하라고 하는, 일방적이고 불평등한 협정을 맺자고 했다면 한중수교 협상은 취소됐을 것이다. 그런 불공정한 수교는 성사될 수 없다. 패전국이 아니라면.
더구나 북한 뒤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있다. 만약 미국이 정상국가를 향해 개방과 개혁에 나서고 있는 북한을 패싱한다면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한 것처럼 선제적으로 비핵화에 나서고 국제사회에 이를 검증받을 것이 뻔하다. 이때 중국과 러시아는 대북제재에서 이탈해 경제협력 피치를 올릴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동북아 평화는 차치하고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은 북한이라는 신시장을 고스란히 중국 등 다른 나라들에 내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협상의 달인’을 자처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불공정한 게임 룰을 주장하는 볼턴 보좌관을 바로 옆에 세워놓고 ‘리비아식은 절대 아니며 트럼프식’이라고 못 박은 것이다. 또 김 부위원장과의 면담 자리에 볼턴은 부르지도 않았다.
베트남식 개방과 시장경제 도입으로 30년 내 남한보다 더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게 북한의 포부다. 북한에는 500여개의 허가된 장마당이 번성하고 있다. 평양의 여명 거리는 소위 자본가인 ‘돈주’들에게 민간 분양을 해 만든 4,800여세대의 고층 빌딩 신도시다. 북한 주민들은 남한 내 탈북자들과 직접 핸드폰 통화를 하고 중국에서 들여온 USB를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한국 드라마와 음악을 보고 듣고 있다. 반면 남한에는 20년, 30년 전 버전의 허위·왜곡 북한 정보와 전문가가 너무 많다.
북한의 개혁·개방은 이미 내재적 동인에 의해 빠르게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남한의 일부는 ‘악의 축’인 북한이 고도의 협상술로 대북제재를 느슨히 하면서 종국에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심지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남침을 해 적화통일을 할 것이라는 시대착오적 맹신에 빠져 있다.
세계 최강의 무력집단인 미국과 한국의 동맹은 군사력에서 절대 우위다. 더구나 김정은 위원장은 동북아 안정을 위해 주한미군 주둔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북미 정상회담이 깨지면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자 시장이 될 북한과의 경제교류는 한참 뒤로 미뤄지게 될 것이다. 코앞에 두고도 새 생산기지와 시장을 얻지 못한다면 중견·중소기업들에게는 천문학적 손실이다.
하루아침에 개성공단 문을 닫아버린 것처럼 세상의 큰 변화와 흐름을 외면해온 냉전 극우세력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북미 정상회담이 무산되고 전쟁 위기국면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듯하다. 구한말 맹목적 쇄국에 빠져 주권을 잃게 만든 수구세력,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해가는지도 모르고 일제에 충성한 친일파의 잔영이 이들에게서 보인다. sky@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