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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인두세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잉글랜드와 프랑스 간 백년전쟁이 한창이던 1381년, 잉글랜드 켄트주의 지붕수리공이었던 와트 타일러가 농민들을 이끌고 난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전국으로 번진 난은 결국 실패했지만 이후 영주들의 경제적 기반이었던 장원제를 무너뜨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와트 타일러의 난’을 촉발시킨 것은 오랜 전쟁과 흑사병으로 비어버린 왕실과 영주들의 금고를 채우기 위해 농민들로부터 거둬들인 과도한 인두세(人頭稅)였다. 소득이나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성인들로부터 일률·정액제로 걷는 인두세는 가장 원시적인데다 세수 확보가 쉬워 세금 중에서도 가장 역사가 길다.







19세기 후반 캐나다에서는 철도 건설 현장에 동원된 중국계 이민자들을 배척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두세가 악용됐다. 밀려드는 중국인들의 집단이민을 막기 위해 캐나다 정부는 당시 노동자 1년 급여의 3배에 달하는 1인당 300달러의 인두세를 부과했다. 1885년에서 1923년 사이 캐나다 정부가 이 명목으로 거둬들인 인두세는 2,300만달러에 달했다. 캐나다 정부는 100년 가까이 지난 2006년 이 문제를 공식 사과하고 이에 대한 보상까지 했다.

우리 역사에서도 인두세는 심심치 않게 농민 수탈의 수단으로 이용됐다. 특히 군대 징집 면제의 대가로 냈던 군포(軍布)는 조선 후기 악명을 떨쳤다. 죽은 사람을 살아 있는 것처럼 꾸며 군포를 받는 ‘백골징포(白骨徵布)’, 갓 태어난 아이에게서도 이를 걷어가는 ‘황구첨정(黃口簽丁)’, 이웃에게 이를 대납하도록 하는 ‘인징(隣徵)’ 등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20세기 이후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라진 인두세를 둘러싼 논란이 아마존·보잉·스타벅스 등 굴지의 기업들이 모여 있는 미국 시애틀에서 벌어지고 있다. 대기업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급등하자 길거리로 내몰린 노숙인들을 구제한다는 명목으로 시가 대기업 직원 1인당 275달러(한화 약 30만원)의 ‘고용자 시간세(Employee Hours Tax)’를 거두는 조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급등한 임대료 때문에 터전을 잃고 길거리에 내몰린 서민들의 주거 문제 해결책은 어떻게든 마련돼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규모 고용창출을 통해 침체된 지역경제를 살린 기업들에 고스란히 그 책임을 지우는 것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정두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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