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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금융을 상대로 ‘정치’하는 장관들

"희망퇴직 시키고 신규채용하라"

자신의 영달 위한 '무책임 압박'

은행별로 선발 인원 할당설까지

금융산업 발전은 안중에 없나

김홍길 금융부장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최근 시중은행장을 불러 모아 놓고 “은행들이 눈치 보지 말고 적극적으로 희망퇴직을 하고 퇴직금을 올려주는 것도 적극적으로 하도록 권장하겠다”고 주문했다. 고액연봉을 받는 고령직원을 내보내면 젊은 직원 2명을 채용할 수 있고 36개월 치 월급을 위로금으로 줘도 생산성을 감안하면 단기적으로 이익이 될 수 있다. 은행들도 싫지 않은 눈치다. 있던 사람 내보내고 신규로 채용하면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에 부응할 수 있다. 금융당국 수장이 압박하니 은행 입장에서는 손 안 대고 코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은행 고위임원들도 고령직원의 생산성을 감안하면 어떤 식으로든 빨리 내보내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감한다. 그러나 내보낸 인력보다 더 많은 신규 직원을 채용하라는 데 대해서는 고개를 젓는다.

한 은행 고위임원은 사석에서 “(최 위원장이) 자기 정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출직에 뜻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윗선’에서 은행권 채용을 확대하는 압박이 내려오니 최 위원장이 성의는 보여야겠고 그렇다고 마땅한 정책수단이 없다 보니 이 같은 말도 안 되는 ‘립서비스’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 은행 임원을 만나 보면 직간접적인 신규채용 압박이 굉장히 심하다고 한다. 은행별로 채용인원 할당량까지 내려와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은행들은 밀린 숙제하듯 채용을 확대하고 있다. 은행 서비스가 대부분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있던 직원들도 내보내고 재배치해야 할 판에 신규채용을 늘려놓으면 나중에 뒷수습은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답이 없다. 이미 시중은행 창구는 고객들이 찾지 않은 지 오래다. 점심시간을 활용해 직장인이 업무를 보기 위해 몰리는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시간에는 고객보다 창구에 있는 직원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외국계 은행 고위관계자는 사석에서 “일선 창구에서 일어나는 거래는 전체의 5% 정도에 불과한데 지점 창구에 배치된 직원은 전체 40%가 넘는다”고 혀를 찼다. 합리적인 경영자라면 더 이상 창구 단순업무를 위해 고임금의 신규 직원을 마구 뽑아야 할 유인이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금융당국 수장이 공개적으로 고령자는 자르고 젊은 직원은 더 뽑으라고 압박을 하니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 수장이 한 발언치고는 너무 무책임하고 최 위원장 본인이 살아남기 위해 ‘정치’를 하고 있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금융노조 간부 출신인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도 최근 은행장들을 불러 모아 놓고 “은행들이 노동시간 단축의 모범사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며 “노동시간 단축으로 더 많은 청년이 금융 분야에 취업할 기회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자”며 ‘본심’을 드러냈다. 한번 뽑은 직원을 쉽게 자를 수도 없는 상황에서 채용만 늘리면 은행의 생산성은 누가 책임지나. 다들 자기 정치에만 바쁜 것이다.

지난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주식매매 수수료에만 목매는 천수답 경영을 해온 증권사를 대형 투자은행(IB)으로 키우기 위해 ‘한국형 IB’ 도입을 추진했다. 정치권이나 여론의 반대가 컸지만 그런 시도가 있어 지금의 자본금 3조원 이상의 한국형 IB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지금의 금융은 상상력도, 흔한 활력도 찾아보기 어렵다. 금융이 부가가치를 높여 제조업에 이어 국부 창출의 역할을 담당해도 시원치 않을 상황인데 국내 은행들은 몸집 큰 ‘전당포’,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기의 담판이 될 북미 정상회담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북한이라는 시장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계속해서 금융을 이런 유아적인 수준에 머물도록 방치해도 되는 것인지, 자신의 영달을 위해 금융을 상대로 정치만 하려 드는 장관에게 맡겨놓아도 되는 것인지, 정말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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