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들이 미국의 본격적인 통화 긴축 여파로 지난 2013년 ‘긴축발작’(Taper tantrum)을 재연할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자금유출과 통화가치 급락을 막기 위한 방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신흥국들은 지난달부터 연쇄적으로 금리 인상을 단행한데 이어 외환 스와프 거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에까지 나서며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선진국들의 긴축 속도가 가팔라지면서 신흥국들들의 통화위기 방어를 위한 총력전이 무색하게 금융시장 불안은 고조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7일(현지시간)JP모건의 신흥시장 통화지수(EMCI)가 65.745로 1년 4개월 만에 최저치를 또다시 갈아치웠다고 전했다. 이날 신흥시장 불안을 부추긴 것은 브라질이다. 브라질은 이번 주에만 두 차례에 걸쳐 추가 외환스와프 거래에 나서는 등 환율방어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중앙은행의 개입에도 오히려 헤알화 가치는 급락했고 상파울루 증시의 보베스타 지수도 5일부터 사흘째 하락세를 이어갔다. 브라질은 오는 10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 불안과 트럭 운전사 장기 파업이라는 경제 악재가 겹치면서 금융시장에서 아르헨티나와 터키에 이은 통화위기 불안국으로 지목되고 있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2016년 10월부터 12차례 연속 내려온 기준금리를 지난달에 6.5%로 동결하고 이달 5일과 7일에는 외환스와프 추가 거래를 진행하는 등 시장을 진정시키는 데 적극 나서고 있지만, 투자자들의 동요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동안 신흥국시장의 취약성은 아르헨티나 페소화, 터키 리라화에서 대규모 매도를 야기했으나 이제 브라질로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장에서는 일단 신흥국 위기에 불을 지핀 아르헨티나 이날 아르헨티나로부터 500억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 지원을 받기로 합의한 것이 신흥국 위기설을 잠재울 분수령이 될 것을 기대하는 모양새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4월 말부터 3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연 27.25%에서 40%로 인상한 데 이어 지난달 8일부터 시작한 IMF와의 구제금융 논의를 이날 마무리지었다. 전문가들은 페소화 가치가 올해 들어서만 30% 이상 떨어지는 등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 이탈이 지속되고 있는 점은 우려되지만 일단은 이번 자금 조달로 지지 부진했던 아르헨티나의 개혁에 속도가 붙어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터키도 이날 시장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정책금리인 1주일 레포(Repo) 금리를 1.25%포인트 높은 17.75%로 결정하면서 또 한 번 환율 방어에 나섰다. 이는 지난달 28일 3% 금리인상을 발표한 지 불과 2주 만이다. 리라화 가치는 금리 인상이 발표되고 다소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여전히 연초 대비 18%가량 떨어진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신흥국 중앙은행들의 자구책이 효과를 낼 것으로 낙관하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국제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이날 17개 터키 은행의 신용등급을 무더기로 강등하고 추가 강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은행 외 금융회사 2곳도 신용등급 재검토 대상에 올랐다. 에릭 넬슨 웰스파고 외환전략가는 “(중앙은행의 시장) 개입은 일시적인 안도를 줄 수 있지만 그 자체로는 약한 것을 강한 것으로 전환하기에 부족하다”며 “더 지속적인 회복이 있으려면 통화를 둘러싼 시장의 분위기가 더 현저하게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흥국 통화위기가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와 유럽중앙은행(ECB) 통화정책회의가 예정돼 있는 다음 주를 고비로 더욱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여러 신흥국 통화 가치가 급락하는 등 금융시장 불안이 이어지고 있지만 선진국들은 신흥국의 신호에 아랑곳하지 않고 긴축 행보에 나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피터 부크바 블리클리투자자문그룹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미 CNBC방송에 “미 연준은 회의 이후 대차대조표 축소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라 긴축 정책은 두 가지로 더욱 세게 나타날 것”이라며 “달러화 강세가 이어지면서 해외 기업과 국가들이 보유한 달러화 부채의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했다.
/박민주기자 park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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