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세계 초강대국 미국과 ‘세기의 회담’을 치르기 위해 싱가포르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서방의 외교무대에 처음으로 공식 데뷔하는 셈이다.
지난 2012년 집권한 김 위원장의 해외 나들이는 이웃인 중국 방문 두 차례뿐이다. 여기에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판문점 남측 지역을 다녀갔지만 서방 무대에 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단순한 데뷔가 아니다. 지난 70년간 첨예하게 대립해온 ‘적국’ 미국의 최고지도자와 화해의 손을 잡을지 결단해야 한다.
김 위원장은 부친이 물려준 ‘가난에 찌든’ 나라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강한 욕망과 ‘체제 수호의 강력한 보검’으로 내세웠던 핵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처지다. 전자를 취하고 후자를 버리는 결단이 필요하며 그럼으로써 북미관계 정상화로 갈 수 있는 대장정에 나선 셈이다.
김 위원장은 1984년 1월8일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용희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강력한 일인 통치자의 아들로 ‘황태자’ 수저를 물고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일반 북한 주민이 상상할 수 없는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살아왔다.
부친이 여러 부인을 둔 탓에 어릴 적부터 모친의 권력 지향적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고 권력 장악을 위해서는 경쟁자를 제거하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부터 배웠다. 고모부 장성택과 이복형 김정남을 제거한 배경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10대 중반에 최고의 선진국 스위스의 베른에서 평범한 공립학교에 다니면서 선진 문물을 익혔다.
스위스 학교에서 가르치는 세계사 등 미국과 서방세계에 대한 다양한 수업은 모든 것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10대의 김 위원장 두뇌에 고스란히 입력됐다.
/싱가포르=특별취재단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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