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망 중립성 원칙’이 11일(현지시간) 폐지됐다. 인터넷 서비스를 공공재로 간주해 콘텐츠를 차별할 수 없게 한 망 중립성 원칙이 사라지면서 통신사업자는 ‘갑’의 위치에 서게 됐다. 다만 추가 지출이 불가피한 콘텐츠 사업자나 정보기술(IT) 스타트업의 반대가 만만치 않아 한동안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망 중립성 원칙 유지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는 국내 통신업계에 미국의 망 중립성 폐지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지난해 12월 망 중립성 폐지를 결정한 후 유예기간인 6개월이 모두 경과하면서 이날부터 인터넷 서비스에 망 중립성 원칙이 적용되지 않게 됐다.
망 중립성은 인터넷 서비스를 전기·수도 같은 공공재로 간주해 통신사업자가 데이터의 내용에 따라 속도와 요금에 차별을 두지 않도록 하는 원칙이다. 버라이즌·AT&T 등 통신기업들은 그동안 망 중립성 원칙에 따라 동영상·게임 사업자 등 모두에 동등한 품질의 인터넷을 제공해왔다. 하지만 망 중립성이 폐지되면서 이제부터는 과도한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콘텐츠 사업자에 차등요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됐다. 상대가 이를 거부하면 고의로 데이터 전송속도를 줄이는 조치 등도 취할 수 있다.
망 중립성 원칙 폐기에 가장 크게 반발하는 업계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거대 IT기업이다. 페이스북·넷플릭스 등은 최근 동영상 등 데이터 용량이 무거운 콘텐츠 사업에 집중하고 있어 통신사업자들의 추가 요금 납부 요구를 가장 먼저 받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IT 대기업을 대변하는 인터넷협회는 이날 성명에서 “IT업계는 재판·행정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망 중립성을 확보해나갈 것”이라며 “많은 국민과 정부 관계자들이 통신속도의 의도적 저하나 차단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IT 중소기업들도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금까지는 인터넷 요금이 저렴했기 때문에 이른 시간 내 다수의 이용자를 확보하는 데 부담이 없었지만 트래픽이 늘어나면 요금 인상 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또 통신사업자가 자회사에 인터넷 회선을 추가 배정하고 경쟁사에 지나친 요금을 징수하는 등 자의적인 회선 분배를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소비자들도 넷플릭스 등 동영상 콘텐츠 기업이 인터넷 요금을 추가로 납부하게 되면서 구독료 역시 따라서 오를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민주당 상원 지도부는 최근 인터넷 망 중립성 유지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해 찬성 52표, 반대 47표로 통과시켰지만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은 뚫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민주당 상원 지도부는 11월 중간선거까지 이 문제를 정치쟁점화할 계획이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망 중립성 수호에 반대하는 공화당 의원들이 피해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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