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56개의 민족이 있고 서방의 화하계(華夏系), 남방의 묘만계(苗蠻系), 동방의 동이계(東夷系) 등 지역별로 서로 다른 신화를 가지고 있어서 정체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나라죠. 하지만 최근 여러 민족을 상징적으로 하나로 만드는 ‘원 차이나 프로젝트(One China Project)’를 진행하는데 국가의 이데올로기와 이념 그리고 정체성 확장을 위해 신화를 동원하고 있어요. 신화가 그저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겠지요.”
지난 14일 대신고등학교에서 열린 고인돌 강좌 ‘상상력의 뿌리, 동양신화의 귀환’ 두번째 강의에서 김윤아(사진) 박사는 “신화는 인류의 문화적 원형(archytype)으로 한 나라에 속한 민족의 정신적 종교적 뿌리이지만, 중국은 땅덩어리가 너무 크고 50개가 넘는 많은 민족이 오랜 세월 살아왔으며, 게다가 분서갱유 등으로 책을 불살라버리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해서 신화의 내용이 빈약하고, 그나마 있는 신화는 뿔뿔이 흩어져 있으며 단편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면서 “원 차이나 프로젝트는 그리스로마 신화처럼 신의 족보를 만드는 거대한 프로젝트”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고인돌(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은 본지 부설 백상경제연구원과 서울시교육청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는 생애 주기별 인문학 아카데미로 올해 6년째다. 이번 강좌는 종로도서관에서 지역의 학교를 지원하기 위해 준비했다.
김 박사는 그리스로마신화에 친숙한 학생들을 위해 동양의 신과 서양의 신을 비교하면서 설명했다. “태초에 땅이 먼저 있었고, 하늘이 생겨났다고 동양과 서양의 신화에서는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리스 신화에서 땅의 여신 가이야는 동양신화에서 여와와 비슷한 존재랍니다. 여와는 인간을 흙으로 빚어서 만든 신으로 대홍수신화 후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되자 동이계의 남자 신인 복희씨와 후손을 낳게 된답니다. 사실 둘은 오누이였어요.”
김 박사는 대홍수신화에 등장하는 용이 동양과 서양에서는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동양에서는 뇌신(雷神) 즉 번개신이 용의 형상으로 나타나는데, 물을 상징하고 있어요. 그러나 서양에서는 불을 뿜는 괴물로 등장하지요. 애니메이션 뮬란에 용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어요.”
그는 세계축(axis mundi), 거인신체화생설 등 다소 어려운 신화학의 전문 용어를 다양한 예시를 곁들여 쉽게 풀어 소개하고, 신화가 어떻게 인류의 정신적 원형이 되었는지를 설명해 나갔다. 알 속에 들어있던 반고는 카오스 즉 혼돈을 상징하다면, 7일 만에 죽고 나서 질서가 도래하는 코스모스의 세계가 된다는 이야기는 마치 성경의 한 구절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거인 신체화생설은 동양이든 서양이든 비슷하다. 거인이 죽어 사지는 산이 되고, 피부는 초목이 되고 두 눈동자는 해와 달이 되며 혈관과 근육은 길이 된다는 식이다. 학생들은 애니메이션과 게임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이야기가 신화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신기해하며 강의에 집중했다. 총 3강으로 구성된 이번 강좌는 1강 왜 동양신화인가?, 2강 동양신화의 세계-동양신화에 대한 심층적 강의, 3강 동양신화와 현대 대중문화 등으로 진행된다.
한편, 제 6기 고인돌 프로그램은 서울시교육청 산하 22개 공공도서관과 50여개 중고등학교를 찾아가 문·사·철(文·史·哲)을 바탕으로 미술·음악·건축·과학·경제학 등으로 주제를 확장해 오는 11월까지 생활 속 인문학 강연을 펼쳐나갈 예정이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시교육청 평생학습 포털 에버러닝에서 확인할 수 있다./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