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10회 분량으로 20개월 딸과 아빠가 떠난 스위스 여행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번 스위스 여행은 지난해 12월 9일부터 17일까지 루체른, 베른, 체르마트, 생모리츠, 취리히를 둘러본 8박9일 여정입니다. 딸과 둘이서만 여행을 떠난 ‘용자’ 아빠는 혼행(혼자여행)을 즐기며 전세계 44개국을 다녀온 자칭 중수 여행가입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딸과 관계가 더욱 돈독해진 긍정적 효과와 더불어 엄마가 이제 안심하고 딸을 아빠에게 맡겨두고 주말에 외출해버리는 ‘주말 독박육아’의 부정적 영향이 모두 나타났습니다. 10년 전 ‘혼행’을 줄기차게 다닐 당시 혼행이 대중화될 것이라 예측 못 했는데 앞으로 10년 뒤에는 아빠와 자녀만 떠나는 여행이 혼행처럼 익숙해 질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며 여행기를 시작합니다.
루체른에서 베른으로 출발하는 기차는 1시간 정도 걸린다. 기차 배차는 아주 촘촘하게 돼 있다. 직통 열차는 매 정시에 출발하고 경유하는 열차는 중간중간 아주 많다. 나는 유모차+캐리어+백팩으로 양손과 등이 모두 자유롭지 못 한 관계로 직통열차를 타기로 했다. 열차 플랫폼 의자에 앉아 유러피언처럼 20개월 베이비 수아와 크로아상을 나눠먹고 있자니 서서히 들어온다. 유모차와 캐리어를 빠른 순서로 열차에 집어넣는 방법은 이전 2편에 소개한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처럼 아주 단순하다. 객차 안으로 유모차 올리고 나는 내리고 캐리어 올리고 객실 들어가고 (청기 백기 올리기와 더 비슷한건가)
기차는 어느덧 한 시간을 달려 베른에 도착했다. 스위스 연방국의 수도답게 기차역이 아주 번잡하다. 기차역보다 더 번잡한 건 내 머릿속이다. 12월 스위스는 장마철과 다름없었다. 루체른에서 지겹게 만났던 비가 베른에서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베른은 은근 호텔값이 비싸서 기차역 앞으로 숙소를 정하진 못 했고 도보 12분 거리로 숙소를 마련했던 것이 떠오른다. 구글맵을 켰더니 5블록 이상은 걸어가야 한다. 일단 방향부터 잡자.
오른손으로 유모차를 핸들링하면서 왼손으로 캐리어를 밀다보니 직진을 해도 우측으로 쏠린다. 이번엔 왼손으로 유모차를 핸들링하면서 오른손으로 캐리어를 미니까 좌측으로 이탈한다. 비를 맞으며 길거리에 멈춰서 어떤 방식으로 끄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안정적일지를 떠올려본다. 궁리 끝에 선택한 방법은 오른손으로 유모차를 밀고 왼손으로 캐리어를 질질 끄는 방식이다. 가슴 앞으로는 유모차가 나오고 엉덩이 뒤쪽으로는 캐리어가 질질 끌려오는 형태다. 이게 은근히 안정감을 주더라. 유모차와 내 몸과 캐리어가 삼위일체가 됐다고나 할까.
베른은 인도에 턱이 많다. 휠체어친화 도시가 아니었나. 삼위일체로 잘 가다 보면 어느새 턱이 나와 캐리어를 잠시 내려놓고 유모차를 올리고 다시 캐리어를 올린 뒤 지나가야 한다. 비를 맞으며 단순 반복작업을 하다보니 12분 거리가 30분 이상으로 느껴진다. 삼위일체로 전진하다 인도의 턱 앞에서 유모차·캐리어를 청기백기 올리듯 올리고 또 삼위일체로 걷다보니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
호텔 방에 들어오니 20개월 베이비 수아는 유모차에서 딥슬립 중이었다. 침대로 옮겨 놓고 고단한 짐꾼의 하루를 와인으로 달래본다.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지만 비가 잔뜩 오는지라 만사 포기하고 저녁을 먹은 뒤 잠자리에 든다.
새벽 5시 잠깐 눈을 떠서 창밖을 보니 날씨가 맑다. 오~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잠을 잔다.
7시에 일어나서 활동을 하려고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리고 있다. 음~ 유모차 끌고 다니기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아침식사를 하러 갔다.
오전 9시 외출할 준비를 마치고 창밖을 보니 눈이 펑펑내리고 있다. KBS 박대기 기자 머리에 눈 쌓이는냥 시간이 갈수록 기상 여건이 더 안 좋아진다. 베른을 포기하고 다음 일정으로 넘어갈까 순간 고민했다가 날씨가 변하길 기원하며 유모차를 끌고 밖으로 나가본다.
고색창연한 도시 베른의 산책 코스로 가이드북에서 추천한 영국정원을 우선 가보기로 했다. 벤치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보며 잠시 호연지기를 기르는 곳이라는 멋진 설명이 나와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베른 구도심의 모습이 아름답다는 말과 함께. 아인슈타인 박사가 산책을 즐긴 곳이기도 하다.
버스를 타고 6정거장 정도 간 뒤 영국정원 앞에 내렸다. 하늘엔 눈이 그야말로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영국정원 입구로 들어가니 이곳이 정원인지 스키장인지 가늠이 안 된다. 말 그대로 눈밭이다. 벤치에 아인슈타인 조형물도 설치해놨지만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새하얀 눈밭에 유모차 바퀴자국만 퀭하니 남은 풍경을 보니 공포체험 테마파크 느낌이 밀려온다. 여기서 도보로 15분 정도면 베른의 상징인 곰 공원으로 이어지지만 눈길로 인해 가긴 어려운 상황이고 다시 버스를 타고 베른 구도심으로 돌아왔다.
베른의 상징인 시계탑 치트글로게 앞에서 눈을 맞으며 인증샷을 찍고 베른 대성당을 보는 둥 마는 둥 지나가며 구도심을 걷다보니 눈이 그치기 시작했다. 걷다보니 어느덧 베른의 상징인 곰공원에 도착했다. “좁은 공간에 갇힌 곰이 불쌍하다”는 의견도 있던데 곰 구경하러 이리저리 다녀도 곰이 안 보인다. 웬지 모를 집착에 곰을 찾아 좁은 길을 헤집고 다녔는데 도통 보이지 않는다. 거. 참 체념하고 갔던 길을 돌아가려니 팻말 하나가 보인다.
“곰은 동면중”
초등학교만 나오면 누구나 안다는 그 상식. 곰은 겨울잠을 자는 동물이었는데...
전천후 유모차 커버 덕에 기상여건에 관계 없이 유람을 즐길 수 있는 수아는 어느새 낮잠에서 깨어나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날씨가 좋아져 커버를 벗겨 준다. 걷다 보니 넒은 광장에서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광장 뒤쪽엔 연방의사당 건물이 있었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뒤쪽으로 가길래 슬슬 따라가 봤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그야말로 멋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베른을 흐르는 강과 그 주변의 건물들 그리고 설경. 특히 이곳이 주변에서 가장 높은 지대라서 전망이 탁월했다.
수아 베이비와 함께 셀카샷을 찰칵.
기상이 좋지 않아 최적의 상황에서 보진 않았지만 베른의 구도심은 중세 풍경을 잘 담고 있는 아름다운 지역이다. 개인적 의견으로는 요즘 뜨고 있는 포르투갈의 포르투와도 비슷한 모습을 갖고 있지만 베른이 좀 더 세련된 모습이라고 할까나.
베른에서는 융프라우 산을 갈 수 있는 인터라켄이 가깝지만 14년전 인터라켄을 가봤기에 이번에는 당시 못 갔던 체르마트 지역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그전에 스위스의 명품 온천부터 즐기고. <5편에서 계속>
/강동효기자 kdhy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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