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이 들어간 제품의 사용이 늘면서 우리 몸은 24시간 환경호르몬에 노출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엔 영수증을 맨손으로 만지는 것만으로도 환경호르몬인 ‘비스페놀A’(BPA)의 체내 농도가 2배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큰 논란이 되기도 했다.
환경호르몬(environmental hormone)은 내분비계 교란물질(endocrine disruptors)로 생체 외부에서 들어와 내분비 기관 안에서 호르몬의 생리 작용을 교란시키는 화합물이다. 환경호르몬은 오존층 파괴, 지구 온난화와 함께 세계 3대 환경문제 중의 하나로 대두 되고 있다.
환경호르몬은 일본식 용어로 1997년 5월 NHK 방송에 출연한 일본의 학자들이 “환경 중에 배출된 화학물질이 생물체 내에 유입되어 마치 호르몬처럼 작용한다”고 밝히며 환경호르몬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환경 호르몬은 생체 내 호르몬의 합성, 방출, 수송, 수용체와의 결합, 수용체 결합 후의 신호 전달 등 다양한 과정에 관여하여 각종 형태의 교란을 일으킴으로써 생태계 및 인간에게 영향을 준다. 특히 다음 세대에서는 성장 억제와 생식 이상 등을 초래하기도 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12년 환경호르몬으로 꼽은 화학물질만 다이옥신, 비스페놀A, 스티렌다이머, PCB(폴리염화비페닐), 폴리카보네이트, 프탈레이트 등 176개나 된다.
대표적 환경호르몬인 다이옥신은 우리 몸속으로 들어오면 호르몬의 작용을 교란시켜 유전자 변이, 간 손상, 기형아 출생, 면역체계의 변화, 피부질환 등을 유발한다. 우울증이나 분노 등의 유발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이옥신은 인류가 만든 환경호르몬 중 최악의 독극물로 꼽히는데 다이옥신 1g으로 몸무게 50kg인 사람 2만명을 죽일 수 있을 정도이다. 이는 청산가리보다 1,000배나 강한 독성이다.
다이옥신은 PVC 제제가 많이 포함돼 있는 병원 폐기물이나 도시 쓰레기 등을 태울 때 많이 발생한다. 해외에서는 다이옥신 배출 소각로가 있는 지역에서 선천성 기형질환 위험이 더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또한 자동차 배기가스, 화력발전소, 제지 및 펄프 산업, 철강 산업 등 염소 및 브롬을 사용하는 산업 공정에서도 발생한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가깝게 접할 수 있는 다이옥신은 담배 연기이다. 수많은 문제와 질병을 일으키는 다이옥신이 위험한 이유는 한 번 생성되면 잘 분해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다이옥신이 사람의 몸속에 유입된 후에는 배출되지 않고 수백 년까지도 존재한다. 물에 잘 녹지 않지만 지방에는 잘 녹는 다이옥신은 생물체의 지방조직에 축적돼 생물체를 괴롭히고 토양이나 침전물 속에 차곡차곡 축적된다. 이 때문에 어류부터 조류, 포유류와 사람에 이르기까지 물을 마시거나 숨을 쉴 때, 또는 음식을 먹을 때 다이옥신을 섭취할 수밖에 없다.
플라스틱을 만들 때 사용하는 합성수지 원료인 비스페놀A(BPA)는 불임, 유방암, 기형아의 출산, 성조숙증, 생식기능 장애 유발이나, 당뇨병, 비만, 지능이나 행동 장애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환경호르몬의 일종이다. BPA는 젖병이나 플라스틱 장난감, 통조림이나 음료수 캔, 계산기에서 뽑아내는 영수증이나 은행의 대기 순번표 등에서도 검출되고 있다.
최근 서울대 보건대학원 최경호 교수팀이 할인마트에서 일한 지 평균 11년 된 중년 여성 계산원 54명을 대상으로 영수증(감열지) 취급에 따른 소변 내 비스페놀A 농도를 측정한 결과 영수증을 맨손으로 만지는 것만으로도 환경호르몬인 ‘비스페놀A’(BPA)의 체내 농도가 2배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업무 중 맨손으로 영수증을 취급했을 때의 소변 중 비스페놀A 농도(ng/㎖)는 0.92로 업무 전의 0.45보다 2.04배 수준으로 상승했다.
반면 장갑을 끼고 일했을 때의 비스페놀A 농도는 업무 전 0.51, 업무 후 0.47로 큰 차이가 없었다. 체중 60㎏인 성인의 비스페놀A 하루 섭취 허용량은 3㎎ 정도다. 이번 연구에서는 비스페놀A와 당뇨병의 상관성도 관찰됐는데 영수증에 노출된 비스페놀A 농도가 높은 계산원은 공복 인슐린 수치와 인슐린 저항성이 함께 높아진 것이다.
프탈레이트는 플라스틱 제조 공정에서 가소제로 사용하는 물질로 환경호르몬의 일종이다. 음식 포장재는 물론 통조림, 살충제, 방향제, 샴푸, 위생 장갑, 화장품, CD, 영수증 등 다양한 제품에 폭넓게 사용된다. 프탈레이트에 반복적,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호흡기관 질환, 피부염, 행동 문제, 비만 등을 유발하는 것은 물론 암, 당뇨병 등의 질병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식이 ‘환경 호르몬’ 노출의 주범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는데 최근 UC버클리와 조지워싱턴대학이 함께 조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레스토랑, 패스트푸드점, 카페테리아에서 식사를 자주 한 사람은 집에서 식사하는 사람들보다 혈중 프탈레이트 수치가 35%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몸에 유해한 환경호르몬을 피하기 위해선 먼저 일상생활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나 플라스틱 반찬통 등 플라스틱 사용량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음식을 조리할 때 고기나 생선의 내장은 반드시 제거하고 뜨거운 음식은 유리나 도자기 용기에 담는 게 좋다. 또한 선크림이나 파운데이션, 샴푸, 향수 등 화학 성분이 다량 포함된 화장품은 사용하지 않는 것도 환경호르몬을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다. 비닐포장이 된 인스턴트 식품이나 가공식품은 가급적 섭취하지 않는 게 좋다. 장난감이나 문구를 만지면 꼭 손을 씻고 실내 환기와 청소를 철저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김덕호기자 v1dh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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