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과학잡지 ‘네이처’에 소개된 딥마인드의 인공지능(AI) 알파고 제로가 큰 관심을 끄는 이유는 확장성 때문이다. 학습 없이 실력을 배양할 수 있다면 다른 영역에도 확대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최고경영자는 알파고 제로는 구조화된 모든 문제를 따로 학습을 시키지 않고서도 풀 수 있다고 밝혔다. 여기서 구조화된 문제란 초기 상태와 최종 상태가 정해져 있으며 초기 상태에서 최종 상태로 가는 방법이 정해져 있는 문제를 의미한다. 즉 일반적인 과학기술 문제라는 것이다. 알파고 제로를 어디다 쓸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허사비스는 단지 바둑게임을 이기려고 만든 것은 아니라면서 구체적으로 세 가지 사용 예를 제시했다. 단백질 접힘 현상, 에너지 사용 절감, 그리고 획기적인 신물질 개발이다.
초전도체 등 획기적인 신물질 개발을 예로 든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AI를 사용해 원자의 잠재적 조합을 탐색하면 슈퍼 배터리 또는 미래 소자를 만들 수 있다. 에너지 사용 절감도 마찬가지다. 딥마인드는 알파고 제로에 쓰인 AI 기술을 구글 데이터센터에 적용했다. 데이터센터 내 수천 개 센서로부터 온도를 비롯해 전력량, 냉각펌프의 운영속도, 각종 설정 값 등을 효율적으로 배치해 최적으로 변하게 하니 최대 40%까지 에너지 소비량을 절감했다고 한다. 이러한 데이터센터의 에너지 사용을 절감하는 문제 해결 방식은 바둑을 둘 때 효율적으로 돌을 배치하는 문제와 같았다는 설명이다. 즉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알파고를 따로 학습시킬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허사비스는 알파고로 풀 수 있는 문제로 단백질 접힘을 첫손에 꼽았다. 허사비스는 왜 하필이면 하고 많은 구조적 문제들 중 단백질 이상 접힘 현상에 관심을 가졌을까. 단백질은 거대 분자로 매우 복잡한 구조를 보인다. 이러한 거대 분자를 효율적으로 적은 공간에 배치하기 위해 단백질 분자는 실타래같이 얽혀 있다. 예를 들어 겸상적혈구빈혈(시클셀 빈혈) 발병 여부는 헤모글로빈 단백질이 어떻게 접히느냐에 달려 있다. 즉 같은 성분의 단백질이 접힘 방법의 차이로 발병하는 것이 적혈구 빈혈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단백질 접힘 연구는 계속 수행되고 있으나 워낙 단백질 구조가 복잡해 이를 정확히 해석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그런데 이러한 단백질 이상 접힘 현상을 알파고 제로가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허사비스의 부인이 이탈리아 출신의 분자생명공학자로서 알츠하이머 질환을 연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알츠하이머 질환도 단백질의 이상 접힘으로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추측건대 부인이 하사비스에게 이 문제를 알파고가 풀 수 있느냐를 문의했고 그래서 알파고를 여기에 투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알파고 제로가 이 문제를 거의 해결한 것 같다. 왜냐하면 딥마인드가 최근 신약개발에 뛰어든다고 선언하면서 단백질 접힘 문제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AI가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필자가 전율하는 것은 이제 AI에게 ‘찍히면’ 과기 전문가는 그 분야에서 퇴출당할 운명이라는 것이다. 이제 과학 지식과 법칙을 암기하고 알려진 원리를 적용해 답이 정해진 문제를 정해진 시간 내에 푸는 데 집중하는 교육은 별로 쓸데가 없다. 해법은 알파고가 터득한 강화학습과 같은 방식에서 찾아야 한다. 알파고 제로가 스스로와 바둑을 둬가며 더 나은 해법이 무엇인지 학습하는 그 방법이다. 이 방식을 인간에게 적용하자면 스스로 묻고 답을 찾고, 다시 질문하고 또 더 진보한 답을 찾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즉 질문이 먼저인 것이다. 이제는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세상의 문제들을 발견하고, 이를 풀어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전해 내려오는 지식을 공부하는 것은 안타깝게도 별 의미가 없는 세상이 이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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