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이어 유럽까지 긴축 모드에 돌입하기로 하면서 신흥국이 깊은 시름에 빠졌다. 일부 국가는 자금이탈을 막기 위해 금리 인상 행렬에 동참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국내 경제가 좋지 않은 해당국 입장에서는 강달러로 인한 자본유출 등과 어떤 융합 반응을 연출할지 알 수 없어 섣불리 나설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태국과 멕시코·브라질 등의 신흥국은 통화정책 결정이라는 주요 이벤트로 도출될 결과에 따라 이번주가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17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번주 주요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발표한다. 태국·필리핀·브라질이 오는 20일, 멕시코·대만이 21일 각각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지난주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미 기준금리가 10년 만에 2%대로 복귀했다. 이에 따라 강달러와 유로화 강세까지 이어지면 일부 국가들이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금리 인상이 예상되는 국가로 필리핀과 멕시코 등이 꼽힌다. 노엘란 아르비스 HSBC 연구원은 “필리핀 중앙은행(BSP)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진정시켜야 한다는 점 외에 해외 정책 변화에 따른 외부적 요건도 들여다봐야 한다”며 “연준이 매파적 관점을 보이면서 BSP가 20일 통화정책에서 금리를 25bp(1bp=0.01%포인트) 인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필리핀은 최근 경제성장률이 더뎌 금융당국의 고민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기준금리 인하 행진을 멈춘 브라질이 노선을 바꿔 금리를 올릴지도 관심사다. 브라질 기준금리는 2016년 10월부터 12차례 연속 하락하면서 6.5%까지 떨어졌다. 지난달에는 신흥국 자금이탈을 우려해 동결했지만 선진시장의 긴축으로 기조가 바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브라질 국내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해 연간 물가 상승률이 1998년(1.65%) 이후 19년 만에 최저치(2.95%)를 기록하는 등 인플레이션이 가뜩이나 낮은 상황에서 금리 인상에 나설 경우 경제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경제 전문가들은 브라질 인플레이션이 20년래 최저치로 떨어진 상황에서 금리 인상은 어울리지 않는 정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흥시장이 부랴부랴 방어막을 쌓고는 있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어 신흥국들의 고민을 키우고 있다. 아르헨티나가 대표적인 예다.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는 15일(현지시간) 전날 대비 1.05% 하락한 28.45페소에 거래를 마치며 이틀째 사상 최저 행진을 이어갔다. 중앙은행 총재 교체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통화가치 하락을 제어하지 못한 것이다. 14일에는 페소화 환율이 전 거래일 대비 6.58% 치솟아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페소화 가치는 지난주에만 11%, 연초 대비 34.45% 각각 추락했다. 아르헨티나 주가지수인 메르발도 1% 내려 나흘 연속 하락했고 100년 만기 국채 이자율도 사상 최고치인 9%를 기록했다.
신흥국 통화위기에 대한 불안감은 아르헨티나뿐 아니라 남미·아시아 국가들로 전이되는 양상이다. 브라질 헤알화와 멕시코 페소, 칠레 페소화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태국·인도 등 아시아 신흥국 통화가치도 줄줄이 내림세다. 반면 달러인덱스(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지수로 환산)는 4개월 사이 7% 올랐다. 신흥국이 미국·유럽 긴축 행보에 따른 외국자본 이탈을 저지하기 위해 앞다퉈 대응에 나섰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국제금융연구소(IIF) 자료를 인용해 “지난달 신흥시장에서 빠져나간 해외자본이 123억달러로 2016년 11월 이후 최대 규모에 달했다”고 전했다. 이 중 아시아 시장에서 유출된 자금만도 80억달러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신흥국의 근본적인 경제체질 변화가 선행돼야 통화정책이 의미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FT는 “브라질 대선을 앞두고 포퓰리즘 우려가 커지자 투자자들이 매도에 나서고 있다”며 “브라질 경제가 회복되려면 긴축 개혁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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