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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트럼프는 '중국의 봉'

주한미군철수·훈련 취소 발언

70년의 한미동맹 약화시켜

최고 선물보따리 받은 중국

북미회담의 가장 큰 수혜자로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 ‘GPS’ 호스트





“미국은 태평양을 장악해야만 21세기에도 세계의 주도국으로 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고(故)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내게 종종 들려줬던 말이다. 지금의 싱가포르를 건국한 그는 내가 만나 본 인물들 가운데 가장 현명한 전략적 마인드를 지닌 정치인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인생 말년에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비상한 글로벌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지구촌의 안정(stability)이 흔들리는 것을 우려했다.

안정을 유지하는 유일한 열쇠는 지구촌 경제와 파워의 중심지로 빠르게 변모 중인 아시아에 미국이 깊숙이 개입하는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안타깝게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리콴유의 격언을 마구잡이로 훼손하고 있다.

언론도 틀렸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리콴유가 세운 싱가포르에서 열린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의 올바른 헤드라인은 “미국, 한국과의 70년 동맹을 약화시키다”였어야 한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트럼프가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에게 찬사를 연발한 것이 아니라 북한 측의 수사를 그대로 받아들여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도발적”이라 칭하며 취소를 발표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좌관들의 브리핑을 듣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지난 1950년 북한이 남한을 침략한 이래 도발과 위협을 가한 쪽은 남한이 아니라 늘 북한이었다.

현재 북한은 남한 전체 군 병력의 두 배에 가까운 약 100만명의 현역군을 보유하고 있으며 남측에 대한 기습공격을 감행하기 위해 20개의 굴을 구축한 바 있다. 또한 랜드코퍼레이션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남한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인 3,250만명이 거주하는 지역을 사정권에 둔 6,000문 이상의 장거리 야포를 갖고 있다.

2006년 미 국방부는 북한이 남한을 향해 야포를 발사할 경우 서울에서만 25만명의 사망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고 랜드 보고서는 덧붙였다.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지금 북한은 최고 60개의 핵폭탄을 만들었고 이들을 운반할 수 있는 미사일도 개발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남한이 미국과 함께 실시하는 ‘워 게임(war games)’은 호전적인 적대국의 위협 아래서 꼭 필요한 방어훈련이다.

더 나쁜 소식도 있다. 트럼프는 미군 병력을 남한에서 철수시키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자신의 정책을 거슬려가며 현역병들을 전역시키지 않는 한 주한미군 병력의 철수 이유로 그가 제시한 경비절감은 헛소리에 불과하다.

남한이 이미 미군 주둔 경비의 거의 절반을 부담하고 있기 때문에 예를 들어 이들을 조지아주로 전환 배치한다 해도 지출은 줄어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요점이 아니다. 쓰린 과거의 경험을 통해 미국은 미군 병력을 국내에 묶어 두고 있다가 국지전이 발생했을 때 황급히 현지로 파병하는 것보다 분쟁 가능 지역으로 미리 보내 현지 지리에 익숙하게 만들고 실전에 대비해 전투훈련을 시키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체득했다.

소수의 평자들은 이번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최고 승자는 회담장에 가지도 않았던 중국이라고 말한다. 대단히 정확한 지적이다.



중국이 항상 바랐던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금방 수긍할 수 있는 지적이다.

중국의 첫 번째 소망은 북한의 안정화다.

최근까지도 북한 정권이 조만간 내부로부터 허물어질 것이라는 주장이 줄기차게 떠돌았다.

북한의 내부붕괴는 중국에는 악몽이다. 이는 한반도 통일이 남한이 원하는 조건 아래서 이뤄진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중국의 남쪽 국경에 미국의 우방이자 미군이 주둔하는 강력한 민주국가가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이제 미국이 북한에 지원과 투자를 미끼로 던지며 정권안보를 보장해줬기 때문에 중국의 악몽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중국의 두 번째 열망은 아시아 대륙에서 미군을 제거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 또한 허용할 것으로 보인다.

냉전 이후 많은 아시아 국가는 미국이 이 지역에서 철수하면서 우방국들을 무서운 기세로 세력을 확장 중인 중국의 손에 넘길 것으로 우려했다.

이 같은 우려를 잠식시키기 위해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방부 고위관리를 역임한 조지프 나이는 아시아에 약 10만명의 미군 병력을 유지한다는 약속을 문서화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만약 트럼프가 자신의 충동대로 남한에서 미군을 철수한다면 미국은 이 지역에 나이가 제시한 문턱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군사력만을 유지하게 된다.

중국에 트럼프 행정부는 선물 보따리를 계속 안겨주는 봉이었다.

트럼프는 중국 시장에 대한 대안으로 미국의 우방국들이 결성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TP)에서 탈퇴하는 것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TTP는 비회원국인 아시아의 일부 국가들이 기꺼이 수용한 ‘차이니즈 파워’를 막기 위한 방어벽이었다.

이제 아시아의 모든 통행규칙은 만다린(북경어)으로 쓰이고 있다.

리콴유는 옳았다. 향후 수십년 동안 미국이 치러야 할 장기전은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지금 미국은 아시아에서 물러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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