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알던 나는 잊어라.’
24일 0시(이하 한국시각) 러시아 로스토프 아레나에서 숙명의 90분을 함께 보낼 한국(FIFA 랭킹 57위)과 멕시코(15위)의 F조 2차전은 이 한 줄로 정리된다. 골이 없으면 이길 수 없는 축구이기에 공격진의 세기 대결은 당연히 최대 관전 포인트. 손흥민(26·토트넘)-황희찬(22·잘츠부르크) ‘손-황 듀오’와 멕시코 신성 이르빙 로사노(23·PSV에인트호번) 간 2년 만의 리턴매치 결과가 한국의 2018러시아월드컵 첫 승 여부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지난 2016년 8월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조별리그 C조 최종전에서 만났다. 결과는 한국의 1대0 승리. 이번 월드컵에 부상으로 낙마한 권창훈(디종)이 후반 31분 왼발 결승골을 터뜨렸다. 한국은 2승1무 조 1위로 8강에 진출했고 멕시코는 독일에 이은 조 3위(1승1무1패)로 탈락했다. 2012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디펜딩 챔피언의 몰락이었다.
손흥민-황희찬은 풀타임으로 활약했으나 로사노는 퇴장의 쓰린 기억을 떠안았다. 후반 추가 시간에 황희찬을 밀어 넘어뜨려 두 번째 경고를 받은 것이다. 손-황 듀오는 짜릿했던 승리의 기억을 되살리려, 로사노는 브라질의 악몽을 떨치려 맞대결에 나선다.
이 셋에게는 2년간 많은 일이 있었다. 손흥민은 올림픽 직후 맞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두 번째 시즌에 14골을 넣으며 EPL 정상급 골잡이로 발돋움했고 그다음인 2017-2018시즌에도 12골로 토트넘 간판 역할을 톡톡히 했다. 황희찬도 올림픽 경험을 발판 삼아 2016-2017시즌 오스트리아리그 12골과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2골로 맹활약했다. 2017-2018시즌에는 부상으로 고전하는 가운데서도 UEFA 챔피언스리그 2골, 유로파리그 3골을 꽂았다.
올림픽 당시 멕시코리그 파추카 소속이던 로사노는 2017-2018시즌 네덜란드리그에 진출해 첫 시즌에 17골을 뽑으며 리그 득점 5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후반기에 주춤해 득점왕에는 실패했지만 그는 이번 월드컵 1차전에서 독일을 무너뜨리는 한 방으로 단숨에 대회 최고 스타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올 4월 ‘슈퍼 에이전트’ 미노 라이올라와 계약한 로사노는 벌써 바르셀로나·유벤투스·에버턴·비야레알·아스널·리버풀 등 유수 클럽의 타깃이 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한국전에 기를 쓰고 임할 또 다른 이유다. 18세에 일찍 결혼한 로사노는 가족밖에 모르는 두 아이의 아빠이기도 하다.
후안 카를로스 오소리오 멕시코 감독은 “2년 전 처음 그를 성인 대표팀에 소집했을 때 사람들은 그저 빠르기만 한 선수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두둔했는데 그래서 지금 활약이 더 뿌듯하다”고 말했다.
올림픽과 월드컵은 무게감이 완전히 다른 무대다. 당시 한국은 신태용 감독이 이끌었지만 멕시코 감독은 오소리오도 아니었다. 그러나 손-황 듀오와 로사노의 ‘사연 있는’ 재대결은 자꾸 리우올림픽을 떠오르게 한다. 손흥민의 팀 내 역할은 올림픽 때보다 오히려 더 크다. AFP통신은 22일 “한국이 손흥민에게 거는 기대치는 모하메드 살라(이집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 해리 케인(잉글랜드)만큼이나 크다”며 “손흥민이 느끼는 부담감은 아마 이집트의 살라만이 알 것”이라고 했다. 팀 사정상 수비에 적극 가담해야 했고 받쳐주는 동료도 마땅치 않아 스웨덴전 슈팅 0개에 그쳤던 손흥민은 멕시코를 상대로 월드컵 두 번째 골에 도전한다. 그는 4년 전 월드컵 알제리전에서 데뷔골을 넣었다. 그때도 조별리그 2차전이었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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