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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한글의 위대함이여

문성근 법무법인 길 대표 변호사




말은 소리를 이용한 의사소통수단이지만 글자는 기호를 이용한 의사전달수단이다. 그리고 소리를 이용한 의사소통수단은 동물에게도 있지만, 기호를 이용한 의사소통수단은 인간에게 유일하다. 따라서 글자야말로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고, 문명과 야만을 가르는 뚜렷한 기준이다.

그런데 글자가 없으면 문명은 아예 생기지도 않았다. 그리고 어떤 글자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문명의 모습은 현저히 달라진다. 역사를 보매 쉽게 배우고 편하게 쓰는 글자를 가진 민족은 일찍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부강한 나라를 이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쉽고 편한 글자를 가진 사회는 문맹이 적고, 그럴수록 사회구성원 간 의사소통이 원활한 대신 식자(識字)가 누리는 계급적특권이 줄어들기 때문일 것이다.

수만개의 상형문자로 구성돼 배우기 어려운 한자(漢字)를 주로 사용한 동양인에 비해 26개의 알파벳을 조합한 쉬운 글자를 사용한 서양인이 일찍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부강한 나라를 이룬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다.

그런데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편하고 쉬운 글을 가지고 있다. 영어를 비롯한 서양문자의 알파벳은 26개이지만, 한글은 24개이다. 그런데다 서양제국은 26개의 알파벳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음의 수가 7개(a, e, i, o, u, w, y)에 불과해 우리보다 3개가 적다. 그러다보니 한 개의 모음이 여러 형태로 발음되는데, ‘a’ 가 경우에 따라 ‘아’나 ‘어’ 또는 ‘에’, ‘애’, ‘에이’ 등으로 발음된다. 그리고 26개의 알파벳이 대문자와 소문자로 나눠져 그만큼 복잡하다. 그렇지만 한글은 24개의 알파벳을 가지면서도, 경우에 따라 모음을 달리 발음하거나 대·소문자를 구별할 일이 없기 때문에 영어를 비롯한 유럽국가의 언어보다 훨씬 더 합리적이고, 쓰기에 편하다.

한글의 유용함은 일본어와 비교하면 너무나 뚜렷하다. 일본어의 알파벳은 46개나 되지만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로 구별되기 때문에 사실상 92개인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기호 중에서 받침으로 쓰이는 것은 불과 두 개(ん,ン) 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인이 느끼기에 모든 일본인은 혀가 짧아 보이고, 이런 현상은 영어 발음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한글의 우수성은 인터넷 시대에서 특히 돋보인다. 컴퓨터에 자료를 입력하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 26개의 알파벳을 사용하고 대문자와 소문자로 나뉘는 서양어보다 자판의 구조가 훨씬 더 간단하다. 중국어나 일본어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그래서 정보의 입력이나 습득속도는 단연코 세계 으뜸이다.

그런데 이렇게 우수한 글자를 가진 우리나라가 왜 과거에 민주주의를 발전시키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계급적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양반들이 법과 제도를 이용해 백성들에게 우리글을 못쓰도록 억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농공상의 차별을 언어에 침투시켜 쉽고 편한 우리말을 높임말, 반높임말, 예삿말, 낮춤말로 구별해 복잡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은 존댓말과 예삿말의 구별을 이해하지 못해 아주 힘들어 한다.

지금 우리사회에는 차별의식이 밴 말 때문에 벌어지는 갈등이 너무 많다. 예삿말이나 낮춤말을 한다는 이유로 살인사건까지 벌어지니 하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말의 비민주성’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시급하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존대말과 반말의 구별 없이 ‘sir‘, 이나 ’please’라는 단어만으로도 상대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영어나, ‘당신’이라는 의미의 ‘니’ 대신 ‘닌’이라는 간단한 호칭만으로 상대를 존대하는 중국어의 간편함을 이해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지난 칼럼에서 동서양은 물론 남북의 세력이 교차하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한반도는 금세기 후반 과학기술문명의 발전과 인류의 보편성 확대에 따른 새로운 문명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렇지만 지정학적 위치가 전부는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글 때문이라도 대한민국은 세계문명의 중심이 될 수 있다. 한반도와 우리민족의 저력을 제대로 알자./문성근 법무법인 길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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