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총수로서 다사다난한 1년 10개월을 보내고 제복을 벗는 이 청장은 각종 진기한 기록을 세운 경찰청장으로 남게 됐다.
이 청장은 박근혜 정부 4년차인 2016년 7월28일 경찰청장으로 내정됐다.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실 치안비서관으로 근무해 박근혜 정부의 국정철학 이해도가 높은 점 등을 고려했다고 당시 청와대는 밝혔다.
1982년 순경 공채로 경찰에 입문한 그는 경사 시절 경찰 간부후보(37기) 시험에 합격해 경위 계급장을 단 뒤 경찰 내 최고 계급인 치안총감까지 올랐다.
1991년 내무부 치안본부가 외청인 경찰청으로 독립한 이후 경찰 총수 가운데 경찰 조직 내 모든 계급을 밟은 이는 이 청장이 처음이다. 현장의 어려움을 잘 아는 경찰청장 후보라는 점에서 일선 경찰관들의 기대가 컸다.
그러나 국회 인사청문 과정에서 1993년 음주운전 교통사고 사실이 드러나 더불어민주당 등 당시 야당이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등 곤욕을 치렀다. 결국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이 무산됐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그를 청장에 임명했다.
취임 약 2개월 후 시작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집회는 이 청장 자신은 물론 경찰 조직 전체의 운명을 뒤바꾼 역사적 사건으로 알려졌다.
고(故) 백남기 농민이 경찰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지 고작 1년이 지난 시점에 경찰이 촛불집회 대응 과정에서 보인 모습은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경찰은 미리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강경대응하는 일 없이 집회를 최대한 보장했다.
경찰이 이같은 기조를 세운 데는 이 청장의 판단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고 집회 대응에 관여한 경찰 관계자들은 전했다.
주최 측 추산 연인원 1천만명이 넘는 대규모 집회가 4개월여간 이어졌음에도 경찰과 시위대 간 별다른 불상사는 없었다. 평화적 촛불집회는 박 대통령 파면과 작년 5월 조기 대선을 끌어냈고, 이는 10년 만의 정권교체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 ‘박근혜 정부 인물’로 여겨지는 이 청장도 교체 수순을 밟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새 정부는 이 청장을 그대로 둔 채 ‘인권친화적 경찰개혁’ 추진이라는 중책을 맡겼다.
이는 경찰의 숙원인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의 전제조건으로 새 정부가 경찰에 주문한 과제였다. 이 청장은 개혁 대상이 된 정부 기관 가운데 그해 6월 가장 먼저 외부 인사들로 경찰개혁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정부 요구에 신속히 반응했다.
개혁위 발족식에서 그는 백남기 농민과 유족에게 공식 사과하며 머리를 숙였다. 해당 사건에 대한 경찰 총수의 공식 사과는 처음이었다. 이 청장은 재임 기간 박종철 열사가 고문당해 숨진 남영동 옛 치안본부 대공분실을 찾아 헌화했고, 비록 만남이 무산되긴 했으나 전남 보성에 있는 백남기 농민 유족 집을 찾아가 면담을 시도하기도 했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촛불집회가 무사히 치러진 사실을 언급하며 경찰의 노력을 치하한 바 있다.
법적 임기대로라면 오는 8월 퇴임해야 하지만, 정년이 걸린 탓에 2개월 이른 6월 말까지만 근무하게 됐다. 사실상 임기를 완료했다고 보는 것이 중론이다.
과거 경찰청장 중 2년 임기를 채운 이는 13대 이택순·19대 강신명 2명뿐이다. 정부가 바뀌고도 중도하차 없이 퇴직하는 경찰청장은 이 청장이 처음이다. 그를 두고 경찰 안팎에서는 ‘정무감각에 관운까지 더해진 인물’이라는 평이 나온다.
/최주리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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