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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전 국무총리 별세]"정치는 허업(虛業)"...정치인은 과실 챙기지 말고 국민께 돌려줘야

■기억에 남는 어록들

"제2 이완용 되더라도 한일 국교를"

촌철살인으로 위기 맞선 '정치 9단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3김’ 중 한 명으로 한국 현대사를 이끌었던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역사에 기억될 수많은 어록을 남겼다. JP는 오랜 정치생활로 체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적재적소에 맞는 표현을 쓸 줄 아는 ‘촌철살인’의 정치인이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어록 중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은 ‘자의 반, 타의 반’ 발언이다. JP는 지난 1963년 공화당 창당 과정 때 이른바 ‘4대 의혹 사건(증권 파동·워커힐 사건·새나라자동차 사건·회전당구기 사건)’에 휘말려 외유를 떠나게 되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떠난다”고 했다. 이 말은 일상에서 흔히 쓰는 표현이 됐을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그는 후배 정치인들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2011년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대표에게 “정치는 허업(虛業)이다. 기업인은 노력한 만큼 과실이 생기지만 정치는 과실이 생기면 국민에게 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JP는 위기의 순간에 침묵하기보다 견해를 밝히며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그는 1963년 한일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김종필-오히라 메모’ 파동으로 국민적 공분을 사게 되자 “제2의 이완용이 되더라도 한일 국교를 정상화시키겠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을 언급하며 “나는 대통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소신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는 현대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뼈 있는 말을 던져 ‘정치 9단’의 모습으로도 대중에 각인돼 있다.

그는 1980년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 ‘서울의 봄’으로 상징되는 민주주의 시대에 대한 기대감이 커질 때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을 했다. 그의 말처럼 신군부는 정권의 공백 상황을 악용해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꺾었다. 정치권에서 자주 쓰이는 ‘몽니’라는 표현도 JP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말이다. 1998년 당시 박준규 국회의장이 ‘내각제 개헌연기론’을 제기하고 국민회의 측이 ‘내각제 개헌 유보’ 쪽으로 기울자 그는 “참을 때까지 참는 게 지성이지만 그래도 안 되면 몽니를 부리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2001년 초에 이인제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이 김 전 총리를 향해 ‘서산에 지는 해’라고 공격하자 그는 “나이 칠십이 넘은 사람이 저물어가는 사람이지 떠오르는 사람이냐. 다만 마무리할 때 서쪽 하늘이 황혼으로 벌겋게 물들어갔으면 하는 과욕이 남았을 뿐”이라며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그의 말은 자신의 정치적 지지 기반인 충청권에서도 파급력이 컸다. JP는 1995년 지방선거 유세에서 “경상도 사람들은 충청도를 핫바지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아무 말 없는 사람, 소견이나 오기조차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라고 했는데 이는 ‘충청대망론’의 시초로 평가된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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