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무역전쟁의 진앙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첨단기술 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제한 조치를 놓고 극도의 혼란상을 연출하고 있다. 말 폭탄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던 무역전쟁이 세계 경제의 최대 리스크로 부상하는 가운데 무역전쟁의 최전선에 선 미 고위당국자들이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며 무역정책의 혼선을 드러내자 시장의 불안감도 증폭되고 있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25일(현지시간) 이번주 말께 발표할 기술기업에 대한 미국 내 투자제한 조치가 중국 기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므누신 장관은 이날 오전 트위터를 통해 “(투자제한 관련) 성명은 중국을 특정한 게 아니라 우리 기술을 훔쳐가려고 시도하는 모든 나라를 겨냥해 나올 것”이라고 언급했다.
전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 언론은 트럼프 정부가 중국이 미국 내 핵심기술을 빼가거나 도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 측 지분이 25% 이상인 기업은 항공·로봇·통신·반도체 등의 미국 기업을 인수할 수 없게 하는 투자제한 조치를 마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므누신 장관이 관련 보도를 ‘가짜뉴스’로 비난하고 한술 더 떠 투자제한 조치가 모든 국가에 적용될 수 있다고 밝히자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지수가 이날 한때 500포인트 가까이 급락하는 등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WSJ는 므누신 장관의 이날 발언이 지난달 29일 백악관이 중국 기업과 개인의 대미 투자를 제한하고 수출통제를 강화하겠다고 한 발표와 배치된다고 지적하며 전날 보도가 관련 사안을 다루고 있거나 잘 아는 관계자들의 발언에 근거해 나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악관 발표와 배치되는 므누신 장관의 발언으로 혼란에 빠진 시장은 백악관에서 나온 또 다른 목소리로 더욱 더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됐다. 보호무역을 옹호하는 ‘매파’ 인사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은 이날 오후 경제전문 매체 CNBC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방법으로든 우리나라에 간섭하는 나라들에 대해 투자제한 조치를 취할 계획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대중 강경론자인 나바로 국장은 이어 “가까운 시일 내에 일어날 유일한 일은 재무장관이 29일 대통령에게 중국 관련 문제를 보고하는 것뿐”이라고 말해 투자제한 조치가 발동되더라도 중국에 국한될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그러면서 “다른 나라와 관련해서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것이 없다”고 거듭 강조하며 “시장이 오늘 아주 지나칠 정도로 (므누신 발언에) 과잉반응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CNBC는 나바로 국장의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가 외국인 투자를 광범위하게 제한할 것이라는 시장의 우려를 완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나바로 국장의 발언 이후 증시는 낙폭을 줄이며 마감했지만 백악관은 또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였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나바로 국장의 인터뷰 후 연 언론 브리핑에서 “재무장관이 말한 대로 우리 기술을 훔치는 모든 국가를 타깃으로 한 성명이 발표되며 이를 공지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CNBC가 전했다.
WSJ는 대중 관세 부과 등 무역정책에서 대립각을 보인 바 있는 므누신 장관과 나바로 국장이 다시 충돌하면서 증시가 어지럽게 흔들렸다고 지적했다. 재무부는 이르면 29일 외국인에 대한 투자제한 조치와 첨단기술 제품의 수출통제 강화 등을 담은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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