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무역전쟁 확산에 대한 공포가 커지는 가운데 경기침체(recession)를 알리는 시그널이 곳곳에서 나타나며 시장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경기침체의 바로미터로 간주되는 미국의 장단기 금리 차가 지난 2007년 이후 11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공포 지수로 통하는 변동성지수(VIX)도 올해 2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급등하며 시장의 우려를 그대로 담았다. 미국 실업률이 18년 내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는데다 2·4분기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최고 5%에 달하는 등 미국 경기호황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경기침체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이 우세하지만 무역전쟁이 본격화하면 머지않아 실물경기에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목소리가 점점 힘을 얻고 있다.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25일(현지시간) 미국 10년물 국채금리와 2년물 금리 차이를 나타내는 장단기 금리 차이는 0.34%포인트까지 좁혀져 미국이 유례없는 경기침체에 빠졌던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직전인 2007년 8월 말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이 촉발한 무역전쟁으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미 국채금리가 전반적으로 하락하고 있지만 단기 금리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 움직임에 하락 폭이 제한되면서 금리 차이가 좁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단기 금리 격차가 줄어드는 움직임이 지속될 경우 장기 금리가 단기 금리를 밑도는 역전현상이 나타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장단기 금리 역전은 경기침체의 강력한 신호로 여겨지는 현상이다. 통상 시장에서는 장단기 금리 차이가 축소되면서 수익률 곡선이 평평해지는 이른바 일드커브(yield curve)의 ‘플래트닝(flattening)’ 압력이 강할수록 경기침체 리스크도 커진다고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 경제성장률의 꾸준한 상승세와 함께 기업 투자와 소비 지출도 늘고 있어 금리 차 축소만으로는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감을 나타내는 것이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적지 않다. 하지만 경기 전문가들은 현재 미국 경기의 호황이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으며 무역 갈등이 커지면 성장세가 꺾이는 것은 물론 예상보다 이른 시간 안에 경기침체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경고를 쏟아내고 있다. 현재 미국의 경제활력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정책에 따른 단기적 자극만을 반영한 것으로 경기둔화 국면에 진입하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은 이달 7일 “경기부양으로 미 경제는 올해와 내년 큰 폭으로 성장하겠지만 2년 후인 오는 2020년에는 절벽에서 떨어지게 될 것”이라며 “고용이 호조를 보이는 지금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펴면 정작 경기가 둔화될 때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전면적인 무역전쟁이 일어날 경우 경기침체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는 이날 보고서를 통해 “무역전쟁이 글로벌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리고 무역전쟁에 따른 신뢰 감소와 공급망 교란 등이 맞물리게 되면 심각한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과 유럽연합(EU)에서도 보호무역주의로 인한 침체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블룸버그통신은 류허 중국 국무원 부총리와 이위르키 카타이넨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이 이날 중국 베이징에서 회동한 후 “중국과 EU는 무역일방주의와 보호무역주의에 강력히 반대한다”며 “(미국의) 일방적 행동으로 세계 경제가 경기침체와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밝혔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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