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하정우가 감독을 맡아 화제가 된 영화 ‘롤러코스터’의 가장 큰 수혜자는 고성희였다. 이후 5년간 6편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다양한 인물을 연기했던 그녀는 올해 들어 ‘마더’에서는 냉정한 엄마로, ‘슈츠’에서는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커리어우먼으로 변신해 브라운관에서 확실히 입지를 굳혔다.
과거 그녀가 화제를 모으면서 ‘유학파, 엄친딸’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을 것만 같은 그녀는 이 이야기를 꺼내자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러워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엄친아’가 아니다. 그냥 평범한 ‘엄마 친구 딸’일 뿐이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유학생활을 하기는 했지만, 부모님이 어렵게 일하셔서 보내주신거라는 걸 잘 안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유학생활은 그녀를 독하게 성장시켰다. 홀로 모든 것을 헤쳐나가야 했기에 어학부터 학교생활 전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만 했다.
“무엇보다 영어를 죽기 살기로 공부했던 것 같다. 나는 적극적이고 ‘세상을 바꿀거야’라며 정의를 외치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유학생활을 견디며 성격도 뾰족해지고 반항도 많아졌다.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는 상황이 어릴 때는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도 그 덕분에 지금 영어는 잘 하게 됐다.”
처음 연예계에 발을 디딘 시기는 미국에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모델이었다. “미국과는 전혀 다른, 수능을 앞둔 치열한 경쟁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두 나라의 교육방식이 전혀 다르다보니 힘들어 방황하게 된 것 같다. 지인의 추천으로 겨울방학에 한번 배워볼 겸 도전했는데 여기서 매력을 느꼈다.”
고성희의 키는 170㎝, 모델로는 작은 신장에도 에이전시에 뽑혔던 것을 그녀는 아직도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모델이 하이패션과 상업패션으로 나뉘는데 나는 상업패션(뷰티)에서 활동했다. 당시 사진을 찍는 것은 어색했는데 영상은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2013년부터 그녀가 거친 작품은 영화·드라마를 합쳐 9편. 햇수로 6년간 활동했으니 다작 배우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묻자 그녀는 지체없이 영화 ‘롤러코스터’를 꼽았다.
“아직도 가끔씩 영화를 본다. 하정우(연출) 선배가 촬영하면서 도움을 많이 주셨던 기억이 난다. 가끔 연락하면 ”잘 지내냐“ 하신다.(웃음) 활동을 쉬는 시기가 맞을 때가 많아 ‘롤러코스터’ 멤버들과 함께 만나면 많은 이야기를 한다. 삶, 사랑, 가족, 일 같은…. 유일하게 내 인생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다.”
최근에는 김동욱과 부쩍 친해졌다. 개봉을 앞둔 영화 ‘트레이드’를 촬영하며 가까워졌다고. “사는 곳이 가까워 함께 술을 마셔보니 정말 좋은 사람이란걸 느꼈다. 동욱 선배는 친오빠처럼 스스럼없이 모든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을 만큼 사람냄새 나는 분이다. 항상 많은 것을 배운다.”
너무 급하지 않게, 또 너무 느리지도 않게 달려온 고성희는 지금의 행보에 만족해했다. “공백기 동안 ‘그만둘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 ‘연기가 아니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이게 내 길이라 믿는다. 여기까지 오면서 만난 수많은 신기한 우연에 감사하고, 탄탄하게 이어가고 싶다.”
“서른살이 되기까지 6개월이 남았다. 30대로 넘어가는 그 날에도 일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20대에는 방황하고 나태한 시기도 있었지만, 돌아보면 치열하게 살았던 기억도 있다. 앞으로의 10년은 단단하고 안정감 있게, 오래오래 배우생활을 지속할 수 있도록 역량을 키우고 싶다.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를 꼭 얻고 싶다.”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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