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27일 부인 고(故) 박영옥 여사가 잠든 충남 부여의 가족묘원에서 영면했다.
이날 오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영결식이 엄수됐다. 오전7시 JP의 위패와 영정, 태극기로 감싼 관이 영결식장으로 들어오자 가족들과 주변 지인들이 흐느껴 울었다. 1시간가량 진행된 영결식에는 강창희 전 국회의장, 이한동 전 국무총리, 정우택·정진석·안상수 자유한국당 의원 등 250여명이 참석했다.
소리꾼 장사익 선생이 조가로 ‘봄날은 간다’를 부르자 유족들은 끝내 슬픔을 이기지 못한 채 눈물을 쏟아냈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이 전 총리는 조사에서 “김종필 총재님은 누가 뭐라고 해도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를 만끽하는 오늘을 있게 한 분”이라며 “산업화의 기반 위에서 민주화가 싹 트고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목숨을 건 혁명과 매국노의 누명을 쓴 한일 협상, 두 차례의 외유와 신군부 탄압과 망명의 정치 일정은 한 편의 대하드라마가 아니고 무엇이겠나”라며 “모든 고초를 꿋꿋이 이겨내시고 주위를 다독이며 웃으시던 모습에 사랑과 존경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영결식에는 JP의 오랜 친구인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의 아들 나카소네 히로부미 참의원이 일본어와 한국어로 조사를 대독해 눈길을 끌었다. 나카소네 전 총리의 조사에서는 “선생께서는 초대 한일국회의원연맹 대표를 지내고 국무총리로 한일 공동선언을 추진하는 등 한일관계 강화를 위해 시종일관 힘썼다”며 “한시도 마음 편한 날 없이 나아가신 그 인생을 생각하면 실로 대한민국과 행보를 같이하는 생애였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특히 일본과 한국의 수교는 선생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며 “매우 어려운 협상에서 깊은 통찰력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애국적 판단으로 합의에 이르게 했다”고 밝혔다. 영결식이 끝난 뒤 JP의 유해를 실은 운구차는 고인이 살던 서울 중구 청구동 자택으로 이동했다. JP의 자택 앞에서 노제가 열렸고 가족과 이웃 주민 등 100여명이 고인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고인의 유해는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된 뒤 김 전 총리가 졸업한 공주고등학교와 부여초등학교 교정, 그리고 고향 부여 시내를 거쳐 부인이 묻힌 부여군 외산면의 가족묘원으로 옮겨졌다. 부인 박 여사는 지난 2015년 별세했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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