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의 거취 문제를 놓고 고심에 빠졌다. 당 대표 출마에 동의하고 사표를 받자니 문재인 대통령이 차기 당 대표로 사실상 김 장관을 찍었다는 신호를 줄 수 있어서다. 전통 ‘친문’의 반발이 예상되며 새 행안부 장관을 찾아야 하는 단점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임시키자니 김 장관의 정치경력에서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될 기회를 앗아가게 되는 것이어서 마냥 외면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28일 청와대·여당 등에 따르면 김 장관은 차기 당 대표에 출마할 의사가 상당히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문 대통령에게 사표를 수리해달라고 대놓고 요청하는 것도 도의가 아니고 물리적으로도 문 대통령과 독대를 할 여건이 형성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장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당 대표 출마가 정치경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왜 모르겠나”라며 “대통령도 개각을 고민하신다니 정치인 출신 장관들에게 (정치권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사인을 주시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이런 상황에서 김 장관을 놓아주면 대통령이 당 대표로 김 장관을 밀었다는 신호를 줄 수 있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또 김 장관은 전통 친문은 아니어서 당내 친문 세력의 반발도 나올 수 있다. 당초 농림축산식품부를 포함해 2~3곳의 ‘미니 개각’을 염두에 뒀는데 개각 폭이 커져 한반도 정세, 경제 문제 등 갈길 바쁜 정부가 다시 청문회 정국을 맞는 것도 부담스러운 점이다. 문 대통령의 숙원 사안인 검경 수사권 조정이 중요 당사자를 교체하며 차질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마냥 붙잡아둘 수도 없는 상황이다. 당내 입지가 약한 김 장관이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가로막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또 김 장관이 당 대표로 선출될 경우 당청 간 소통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포항 지진 때 현장에 직접 내려간 후 수능을 연기해야 한다고 건의한 것이 김 장관인데 그때를 전후해 문 대통령의 신임이 높아졌다”고 전했다. 김 장관은 당내 비주류에게 호감을 얻고 있다. 홍영표 원내대표, 문희상 국회의장 후보 등 굵직한 자리가 모두 친문으로 채워진 상황에서 비주류의 마음을 달래는 효과가 있고 대구·경북(TK) 출신이어서 오는 2020년 총선에서 TK 쪽의 표심을 노리기에 적합한 카드다.
/이태규·하정연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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