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과 똑같은 16강 실패지만 29일 오후1시50분 인천공항으로 귀국하는 이번 한국 축구 대표팀에는 팬들의 따뜻한 박수가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2014브라질월드컵(1무2패) 때는 일부 비뚤어진 팬이 선수단 앞에 엿을 뿌렸다.
2018러시아월드컵 대표팀은 1승2패 조 3위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지만 독일을 월드컵에서 꺾은 사상 첫 아시아 국가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얻고 돌아온다. 독일은 그전까지 월드컵에서 아시아 국가 상대 5전 전승에 19골 3실점을 기록 중이었다. 그런 독일에 2대0 승리로 80년 만의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불명예를 안긴 것이다. 한국이 이룬 ‘카잔의 기적’에 브라질도 환호했다. 브라질은 4년 전 자국 월드컵 4강에서 독일에 1대7로 참패했다.
마지막 경기 마지막 순간에 나온 짜릿한 승리에 대표팀도, 국내 축구 팬도 웃음을 되찾았지만 2회 연속 16강 좌절이라는 성적표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한국 축구만의 뚜렷한 색깔을 보여주지 못했다. 개인 기술의 격차를 재차 확인한 가운데 ‘악으로 깡으로’ 부딪치는 수밖에 없었다.
가장 시급한 것은 대형 수비수의 발굴이다. 잦은 실수와 실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김영권(광저우)이 악착같은 수비와 독일전 결승골로 재평가받기는 했지만 주전 수비진과 비등하게 경쟁할 자원은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한국 대표팀의 대형 수비수는 홍명보(현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 이후 사실상 대가 끊긴 상황이다. 체격의 월등한 우위를 앞세운 유럽 공격수를 막으려면 아무래도 유럽 무대 경험이 중요한데 현재 유럽에서 유학 중인 유망한 수비수는 박이영(독일 장크트파울리), 서영재(독일 뒤스부르크) 정도로 극소수다. 현대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으로 통하는 풀백 자원들을 제도적으로 길러내는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일본은 꼭 빅리그·빅클럽이 아니어도 이적료와 크게 상관없이 유럽 무대에 도전하는 문화가 선수들 사이에 정착돼 있다.
축구협회의 ‘디테일한’ 대표팀 운영안 마련도 절실하다. 협회는 브라질월드컵 뒤 반복된 실패를 막으려 ‘월드컵 백서’를 공들여 만들었지만 정작 진단한 대로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심리전문가 활용이다.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지난달 서울경제신문 인터뷰에서 “월드컵은 역사이기 때문에 큰 실수를 하면 영원히 안 좋은 기억을 안게 된다. 그 때문에 선수들은 공포심과 두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협회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심리치료사가 한 명이라도 같이 따라가서 상담해주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서에도 심리전문가 활용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선수들이 기댈 곳은 주변의 동료들뿐이었다. 장현수(FC도쿄), 김민우(상주) 등 경기 중 실수를 저지른 선수들은 도 넘은 인터넷 악플에 맨몸으로 시달려야 했다. 자책의 눈물을 쏟을 만큼 힘겨워했으나 체계적으로 이들을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도자 풀을 총동원한 체력·기술훈련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과 함께 대표팀 전담 멘탈 코칭의 도입은 필수가 돼야 한다.
브라질월드컵 때는 황열병 예방접종 시기를 잘못 맞춘 바람에 선수들이 전지훈련에 최상의 컨디션으로 임하지 못했다. 협회는 이번에도 선수단 컨디션 관리에 허점을 노출했다.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은 28일 가장 아쉬움이 컸던 스웨덴과 1차전(0대1 패)을 돌아보며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프레시’하지 않았다”며 “관리가 필요했는데 이동이 특히 많았고 그에 비해 휴식이 적었다”고 했다. 앞서 국내 평가전을 대구(온두라스)와 전주(보스니아)에서 치르면서 잦은 이동에 따라 보이지 않게 피로가 쌓인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베이스캠프인 상트페테르부르크가 2·3차전 장소와 다르게 선선해 무더위에 따로 적응해야 하는 수고가 따른 것 역시 아쉬움으로 남는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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