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자주색 비가 내리는 숲’이라는 독특한 팀명으로 데뷔한 자우림이 올해로 데뷔 21주년을 맞았다. 한 아이가 태어나 성인이 되기 까지와 같은 20년, 밴드가 살아남기 힘든 가요계 환경에서 자우림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유의미하다.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자신들만의 확고한 정체성을 가진 음악으로 큰 사랑을 받아온 자우림은 ‘주류’와 ‘비주류’의 이분법적인 잣대 보다는 가장 ‘자우림 다운’ 이야기에 집중해왔다.
이 정도 연차면 과거의 영광에 의지하거나 익숙한 것을 찾을 법도 한데, 자우림에게서는 여전히 20대 피 끓는 청춘이 머무른다. ‘21년’이라는 숫자와 ‘변화’라는 단어 사이에 이렇게 이질감이 들지 않는 것도 자우림이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 5년 만에 내는 정규음반이자 데뷔 21주년 기념 앨범인데 기분이 어떤가
이선규 : 주변에서 20년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때가 돼서 음반이 나왔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들 뿐, 21주년에 대한 실감은 잘 안 난다.
김윤아 : 앨범을 낼 때마다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 있다. 스튜디오 작업을 할 때는 자학을 하고, 그러다가 정신을 놓고 자동으로 일하게 되는 때가 된다. 그 시기가 지나면 대개 음반 작업이 끝나 있는데, 그때마다 자아도취의 시간이 온다. 그게 바로 지금이다(웃음). ‘음반 너무 좋다’고 들떠 있었다.
김진만 : 21주년 얘기는 주변에서 많이 하신다. 의미 있는 앨범인 만큼 결과가 잘 나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앨범명부터 자우림이다. 상당한 자신감이 엿보인다
김진만 : 들켰다(웃음). 음반 제목을 ‘자우림’으로 하자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있었다. 이번에 다시 제안을 했을 때 다들 반응이 좋았다. 그만큼 다들 앨범에 대한 만족도가 큰 것 같다.
김윤아 : 사운드적인 완성도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 그리고 모든 곡이 자우림이 할 수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동화적이면서도 현실적이고 몽환적인데 관능적이기도 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부분도 있다. 이 앨범은 자우림 자체가 아닌가 생각했다.
- 첫 번째 곡 ‘광견시대’가 굉장히 강렬하다. 이 곡을 첫 번째로 배치한 이유는 뭔가
김윤아 : 앨범 흐름에 때해 고민을 많이 한다. 여러 버전으로 구성해서 들어본 결과 현재의 흐름이 가장 좋다는 판단이 들었다. ‘광견시대’가 1번 트랙이 된 건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처음부터 ‘빵’ 터뜨리니까 뒤에 나오는 음악이 궁금해지는 효과도 있는 것 같다.
- 수록곡 배치가 인상적이다. 어두웠다가 밝아지고 다시 어두워지는 변화들이 돋보인다. 이 또한 의도된 것인가
이선규 : 늘 그랬듯 의도한 건 없다. 음반을 다 만들고 나면 어떤 맥락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되는데 이번에는 그것이 더 명확하게 보였던 것 같다.
김윤아 : 다음에는 어떤 의도를 갖고 음반을 만들어봐야겠다. 뚜렷한 테마를 가지고 만든 음반도 재미있을 것 같다.
- 대중성에 대한 고민은 없나
김진만 : 소위 히트송을 만들 때도 대중들이 좋아할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하하하쏭’도 처음 나왔을 때는 반응이 안 좋았다.
김윤아 : 어떤 음악이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는 정말 아무도 모르는 거더라. 예측할 수 있으면 다들 그런 음악을 하겠지. 그래서 일단 그런 것들은 포기하고 있다. 운에 맡길 뿐이다.
김진만 : 기준은 딱 하나다. 우리 셋이 듣기에 좋은 앨범을 만들자. 사실 그 기준을 맞추기도 벅차다.
- 타이틀곡이 ‘영원히 영원히’가 된 이유는
김윤아 : 이 곡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젊고 건강하시던 분들이 갑자기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중병에 걸려서 돌아가시는 일들이 유독 많았다. 자우림은 그동안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고,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오늘 여기서 행복하자는 이야기들을 주로 해왔다. ‘영원히 영원히’는 그런 맥락을 가진 곡이다.
- 이번 앨범에 21주년이나 정규 10집 앨범에 대한 소회가 녹아있는 곡들은 없나
김윤아 : 작년에 선공개한 ‘XOXO’다. 오랜 시간 다른 아르바이트 같은 것을 하지 않고 음악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저희 음악을 이해하고 들어주신 팬 여러분 덕분이다. 변하지 않고 자리를 지켜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으로 작업한 곡이다. 그런 마음을 표현한 곡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 초창기 자우림 음악은 분노와 절망의 정서가 가득 찼다면 지난 음반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는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자우림의 화자 또한 많이 달라진 것이 아닌가
김윤아 : 처음 자우림이 만들었던 화자는 세상과 싸우고 있었다. 그 당시 우리도 20대였다. ‘세상아, 와라!’라고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리 X-세대 출신이다(웃음). 반면 지금의 화자는 많은 걸 체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죽지 않았으니까 살아야지라고 생각하는 거다. 그런 변화가 음악에도 당연히 녹아들었다고 생각한다.
- 멤버들 모두 흔히들 말하는 ‘기성 세대’가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우림의 화자가 청년일 수 있는 이유는 뭔가
김윤아 : 기성세대라고 하면 기반이 안정되고 미래가 어느 정도 예측이 되는 사람들을 말하지 않나. 그런데 통계를 보면 가장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세대가 40대 초반이라고 하더라. 최소한 저희가 느끼기에 우리 주변 사람들은 아직도 미래에 대해 불안하고 고민한다. 사회가 시키는 대로 착실하게 살아서 좋은 직장을 얻은 사람들도 40대가 되면 자식 교육비, 노후 걱정을 하게 된다. 사회가 편안하고 나라 걱정할 게 없다면 다른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 지향점이 없다는 자우림이 스스로 ‘잘하고 있구나’를 느끼는 순간은 언젠가
김진만 : 자우림은 언제 해체를 할 것인가에 대해 우리끼리 얘기할 때가 있다. 늘 결론은 이전 앨범보다 더 별로라는 생각이 들 때 해체하자였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전작보다 좋은 앨범들을 겨우겨우 만들고 있는 것 같다. 그 점이 가장 만족스럽다.
/이하나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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