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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룡리 전원일기 8> 열전이 지나 간 자리엔 시네마 천국이...

어둠이 내린 골목길

조그마한 응원전이 시작됐다

승부를 떠나 또다른 추억을 쌓으며





2018년 6월18일 월요일.

대한민국의 월드컵 첫 상대인 스웨덴전 경기가 있던 날, 하루 회사를 쉬었다. 대신 빨리 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일찌감치 골목 벽에 흰 천으로 스크린을 걸고 프로젝트 빔을 설치했다. 스크린과 빔의 거리를 조정하고 스피커 상태도 확인했다. 스피커는 실제 극장에서 사용한다는 JBL 제품. 음향 관련 일을 하고 있는 마을 동갑 네기 재욱씨가 빌려줬다. 테스트해보니 묵직한 사운드가 느껴졌다. 이제 모든 준비 완료. 해만 저 서산으로 저물어 주면 된다.



스크린으로 사용한 흰 천은 좀 허술해 보이지만 밤이 되면 훌륭한 물건으로 변한다. 동네 꼬마들은 뭐가 궁금한지 모여들어 장비들을 살펴보고 있다


먼저 골목길을 어슬렁어슬렁 거리는 이들은 동네 꼬마들. “이게 뭐예요. 지금 영화 틀어 주나요.” 왔다갔다하며 컴퓨터 선을 툭 치고 가기에 꼬마들의 주의를 끌 만한 무엇이 필요했다. 컴퓨터 안에 있는 영화를 찾아봤지만 다 고만고만한 것 밖에 없었다. 결국 ‘천만 돌파’ 애니메이션인 ‘겨울왕국’ 더빙판을 보여줬다. 화려한 색상과 노래가 잠시 아이들의 정신을 빼앗는가 싶었는데… 그때 어디선가 “다 본건데요.” 지루함을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은 어느덧 경기시작 30분전이 됐다. ‘그래, 별로 재미없지? 그러니까 우리 축구경기 보자’ 잠시 안도한 순간 다른 애니메이션이 있는 것을 한 꼬마가 발견했다. 초긴장 상태. 마침 그 상황을 지켜보던 아이 엄마가 겨우 설득해 다음 기회를 약속하며 월드컵 중계방송을 볼 수 있게 됐다.

어둠으로 젖어든 골목길에 태극전사 김신욱 선수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동네 꼬마들은 일찍 자야한다며 엄마들 손에 사라져 버렸다. 4년 뒤엔 좀 늦게 자도 되겠지?




드디어 ‘골목응원전’이 시작됐다. 완벽한 어둠에 젖은 골목길. 하나 둘 모여들었다. 한 손엔 캔맥주를 든 채. 치킨은 이미 동났다고 판단해 각자 알아서 먹을 거리를 들고 왔다. 처음부터 자리에 앉지 못하고 선채로 초조하게 경기를 지켜봤다. 밤은 점점 깊어져 가는데 기다리던 골은 안 터지고 속만 타 들어 가던 시간이었다. 귀촌 후 처음 가졌던 응원전은 아쉬운 패배로 끝났다. 밤 하늘엔 아무일 없다는 듯 별들만 빛났다. 다음 경기는 좀 늦은 시간으로 처음이자 마지막 ‘골목응원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아쉬웠다. 다시 4년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이번을 계기로 ‘금요 시네마’를 진행해보자는 의견도 나왔다. 변변한 극장 하나 없는 시골생활에 영화 보러 가는 게 ‘큰 일’이 되는 이 곳. 작으나마 문화적 혜택을 우리 스스로 누려보자는 욕심에 한 달에 두어 번 정도 골목길에서 영화 상영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별이 빛나는 밤, 소년 토토가 꿈꾸던 ‘시네마 천국’을 기다리며… /최남호기자 yotta7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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