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개최된 한 국제회의에 참석했다. 특허 분야 주요5개국(G5)인 한국·미국·일본·중국·유럽의 특허청장들이 모여 특허절차 조화, 심사공조 강화 등 세계 특허제도의 발전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전 세계 특허출원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이들 나라가 모여 IP5라는 협의체를 출범한 지 올해로 벌써 11년째다. 특허출원 세계 4위, 특허협력조약(PCT) 국제특허출원 세계 5위의 지식재산권 강국으로 그에 걸맞은 기여를 해야 한다는 부담은 있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드는 회의였다.
회의장에서는 북미 대륙을 종단하다시피 달려 뉴올리언스까지 이른 미시시피강의 장대한 하구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강 위에는 대형 화물선들이 컨테이너를 싣고 부지런히 오가고 있었고 지금은 관광용이 분명한 증기선도 거대한 물레바퀴를 단 채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평저선(flatboat)이라 불리는 무동력 목선은 증기선과 함께 19세기 미시시피강을 주름잡았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별다른 기술 없이도 제작할 수 있었던 이 소형 선박은 미국 중서부의 농부들이 자신의 농작물을 뉴올리언스로 싣고 가서 팔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도 청년 시절 이 배를 몰고 뉴올리언스까지 두 번이나 간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노예무역과 노예경매가 성행했던 뉴올리언스에 방문했던 이때의 경험이 노예제도에 대한 관점을 확립하게 된 계기였다고 훗날 링컨은 술회했다.
미시시피강과 뉴올리언스가 링컨의 노예제도에 대한 인식만을 깨운 것은 아니었다. 평저선 운항 경험은 미국 대통령 중 유일한 특허로 기록되는 링컨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얕은 여울이나 장애물을 만나 움직일 수 없게 된 선박을 부양시키는 장치가 바로 그것이다. 자신이 처한 역경을 굳은 의지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극복하려는 링컨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발명의 모형은 지금도 워싱턴의 스미소니언박물관에 전시돼 미국 근대 혁신사의 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링컨은 발명가였을 뿐만 아니라 특허제도에 대한 신념도 강한 사람이었다. 특허제도를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과 함께 인류가 두 번째 밀레니엄에서 이룩한 가장 위대한 세 가지 진보라고 주장했다. 링컨의 이 주장은 특허제도 자체가 인류에 큰 편익을 가져다주는 ‘혁신적인 발명’임을 선언한 것에 다름 아니다. 특허제도의 미래와 발전을 주제로 세계 5대 특허청 대표단이 함께했던 이번 IP5 회의가 150여년 전 특허제도의 가치를 확신하던 링컨의 믿음과 맞닿고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번 회의에서는 특허제도의 발전을 위한 새로운 시도에 합의한다는 성과가 있었다. 같은 특허 기술이어도 심사는 나라별로 진행한다는 전통적인 관념에서 벗어나 이달부터 IP 5개 특허청이 하나의 국제 특허출원을 함께 심사해보기로 한 것이다. 특허 가능성을 일찍 알 수 있게 되고 더 나은 특허 심사를 위해 여러 나라가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지를 고민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IP5 특허청장들은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도 협력을 강화해나가기로 했다. 인공지능(AI)·자율주행차 등 신기술에 대한 특허 분류를 더욱 세분화하기로 했고 사물인터넷(loT) 등으로 산업 전반에서 중요성이 높아진 ‘표준특허’를 둘러싼 지재권과 관련한 이슈에 대해서도 논의를 시작하기로 했다.
IP5가 열렸던 뉴올리언스는 미시시피강을 타고 내려온 대륙의 문화가 파도를 타고 멕시코만으로 들어오는 해양의 문화와 섞이는 곳이었다. 그 혼합의 경계에서 재즈라는 음악 장르가, 크레올과 케이준이라는 새로운 식문화가 탄생했다. 조금씩 서로 다르게 각자의 특허제도를 발전시켜온 세계 5대 특허청도 ‘IP5’라는 혼합의 매개를 통해 혁신적인 국제특허시스템을 만들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뉴올리언스에서 가져봤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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