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한 합의나 대책 없이 ‘주 68시간 근무제’에 돌입한 방송사들의 한숨이 끊이지 않고 있다.
드라마 촬영 현장은 작가가 대본을 빨리 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고, 예능 역시 급변한 환경에 적응하려고 PD들이 매일같이 대책회의를 하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는다.
방송가에선 “68시간도 이런데 장기적으로 52시간은 어떻게 맞추느냐”고 입을 모은다. 방송사들은 그나마 1년 유예기간을 확보한 것에 안도하며 프로그램 분야별로 대책 마련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지난 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은 근무시간을 주당 최장 52시간으로 줄여야 하지만, 방송사는 내년 7월부터 적용을 받고 그때까지는 주당 최장 68시간을 유지하면 된다.
드라마의 경우 장기적으로 ‘반(半)사전제작’ 시스템이 정착될 것으로 보는 게 중론이다. 대본이 나와야만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성효 KBS 드라마센터장은 8일 “주 68시간 도입을 위해 시뮬레이션을 해왔는데, 이제 ‘쪽대본’은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체감했다”며 “그리고 ‘밤샘 촬영’을 과거에는 예사로 생각했는데 이 역시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해답은 대본이 빨리 나오는 것”이라며 “지금까지는 현장 위주로 접근해왔다면 앞으로는 프로듀싱,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KBS는 또 장기적으로는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표 아래 별도의 TF(태스크포스) 연구반을 구성해서 반사전제작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방안을 살펴본다. 다른 지상파들도 대책 마련에 부심 중이다. MBC든 SBS든 “뾰족한 방법은 없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지만, 지금부터라도 현장에서 스태프에게 휴식 시간을 보장하고 하반기 방송하는 드라마 촬영 일정도 앞당기는 등 세부적인 조율을 하고 있다. 최원석 MBC 드라마본부장은 “하반기 들어가는 드라마들은 대본을 가능한 한 빨리 뽑아내고, 촬영도 빨리 나가서 방송에 쫓기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며 “노조와도 세부 안을 협의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최근 지상파 3사가 평일 미니시리즈 방송시간을 60분으로 통일한 것도 주 68시간 근무 지침을 준수하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보인다. 예능 역시 논의에 분주한 상태다. 장기적으로는 인력을 늘리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결론을 냈다. 일단 KBS는 근무 시간이 주 68시간을 초과하면 ‘알람’이 울리도록 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주단위 연장근무 현황을 확인해 한 주의 연장근무 시간이 12시간에 도달하면 ‘연장 잔여’ 항목이 빨간색으로 바뀌는 알람 기능이 작동한다. 알람이 울리면 휴가를 쓰도록 조치한다. KBS 관계자는 “아직 도입 초기지만 드라마 제작을 제외하면 의외로 근무시간 조절이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KBS에 따르면 지난 4월 한 주라도 68시간을 초과해 근무한 인원은 전체의 5.4%인 249명이었다. 드라마 사업부의 초과율이 15%를 기록했으며 예능이 속한 제작본부는 6%였다. 지상파보다도 프로그램 제작이 많은 CJ E&M 관계자도 “현재 대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방송 관계자는 “드라마뿐만 아니라 예능까지 모두 ‘B팀’을 돌리는 등 현장 투입 인력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SBS는 드라마와 예능 등 프로그램 장르를 불문하고 매일 같이 제작진 회의를 열어 현실을 공유하고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SBS 관계자는 “드라마, 예능뿐만 아니라 시의성 있는 취재를 해야 하는 ‘그것이 알고 싶다’ 등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경우에도 68시간 근무를 맞추기가 정말 빠듯하다”면서도 “주 68시간을 지키고자 하는 경영진의 의지가 확고하기 때문에 정책에 맞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서영인턴기자 shy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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