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북한은 변했습니다. ‘스마트시티’ 등 세계적 트렌드를 분석하고, 배우고 싶어 합니다.”
2009년부터 40차례 이상 북한을 찾아 2,000여명에게 창업 교육을 한 NGO(비정부기구) ‘조선교류(Chosun Exchange)의 제프리 시(Geoffrey See·33) 대표는 8일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내 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중립국 싱가포르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북한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던 조선교류 ‘세기의 회담’으로 불리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시 대표는 “북한 주민들이 처음에는 식당, 소매업 창업에 관심이 있었으나 자체 스마트폰 보급이 늘어나면서 지금은 IT 창업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전했다.
지난달 말에도 북한을 방문한 시 대표는 “경제특구에 뭘 지어 놓으면 외국인들이 알아서 투자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북한이었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며 “창업, 기업가 정신과 관련한 북한 사람들의 생각, 문화 등 ‘소프트 인프라’가 바뀌고 있다”고 했다.
시 대표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을 다니던 2007년 평양을 찾았다가 “사업가가 되고 싶다”는 대학생을 만난 것을 계기로 ‘조선교류’를 만들었다. 북한 청년들에게 경제·경영·마케팅 지식을 알려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북한 관련 뉴스를 샅샅이 뒤져 대북교류 사업을 하는 이들에게 연락해 도움을 청했으나 2년간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뉴질랜드에서 20년 넘게 인도주의 사업을 하던 단체를 통해 어렵사리 장벽을 뚫고 북한에 가 창업 교육을 시작했다.
창업에 필요한 기업가 정신, 마케팅 방법을 가르치는 워크숍에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북한 주민들이 참여한다. 시 대표는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하나에 대한 관심은 나이 불문이더라”며 “나이 제한을 두려 했더니 항의가 들어왔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처음에는 국가과학원 등 북한 기관·회사 직원 위주로 워크숍을 홍보했으나 지금은 입소문이 퍼져 여기저기서 워크숍 참가 신청이 들어온다. 특히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내 인프라 투자가 증가하고, 창업 관련 분위기도 바뀌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시 대표는 “북한이 아직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예전보다 기업들의 자주성이 훨씬 높아졌다”며 “북한 정부도 성과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한다는 압박을 기업들에 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선교류 활동가인 캘빈 추아(Calvin Chua·33)씨는 “북한 주민들이 처음에는 도로, 전기시설 등 인프라를 놓는 데 관심이 컸으나 지금은 토지 세금, 임대 등을 통해 외국인 투자를 어떻게 촉진할 수 있는지, 어떻게 이득을 얻을 수 있는지에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이들은 남북·북미정상회담 이후 남한을 바라보는 북한 주민들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고 했다. 시 대표는 “이전엔 남한 얘기도 못 꺼냈는데 이제는 남한이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호감을 갖고 바라보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고 전했다.
이어 “(북한 주민들이) 북미 관계에 대한 기대치는 있지만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으며, 중국에 대해선 경제교류를 기대하고 있으나 아직 국제사회의 제재가 있으므로 갑작스럽게 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북미정상회담 장소인 싱가포르가 북한 로동신문을 통해 대대적으로 소개되면서 싱가포르식 경제 개발에 대한 관심도 상당히 높아진 상황이라고 한다.
시 대표는 “현재 남북교류에 대한 (남한의) 기대치가 높은데, 속도 조절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하며 “남북은 같은 민족이고 같은 언어를 쓰지만 살아온 방식, 가진 지식 자체가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서서히 북한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나가고, 협력 사업도 단계적으로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북한에서는 아직 남북교류를 예민하게 생각하고 있으므로 관계가 개선되면 교류 속도가 갑자기 빨라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목표 역시 북한에 창업기업 지원을 위한 센터를 만들어 차근차근 창업 생태계 확립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한편, 이날 싱가포르를 방문 중인 박원순 서울시장도 ‘조선교류’ 활동가들과 만나 대화를 나눴다.
박 시장은 “‘조선교류’같은 싱가포르 NGO의 실험이 서울에도 일어나 북한의 청년들이 서울에서, 서울의 청년들이 북한에서 스타트업을 만들고 성공 사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아직 경제 제재가 있기 때문에 본격적인 교류는 쉽지 않겠지만, 북한의 변화와 자율적인 개방이 이뤄지려면 청년들 간의 교류, 학습, 훈련의 과정이 중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승희인턴기자 shhs950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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