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창업가 김민수(가명)씨는 창업 컨설턴트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언뜻 보면 화려한 직함 같지만 실상은 예비창업가에게 정부지원 사업계획서를 대필해주거나 합격 노하우를 알려주는 게 주요 업무다. 창업을 그만둔 직후에는 관련 경험을 살려 창업가를 육성하는 액셀러레이터에서도 잠시 근무했지만 최소한의 생활비도 마련하기 어려웠다. 사업을 하면서 떠안은 대출금(1억원)의 월이자 30만원에 학자금대출 40만원, 월세 50만원 등을 모두 내려면 200만원 남짓한 월급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았다.
김씨는 “우리 같은 실패 창업가들이 가장 내세울 만한 스펙이 정부지원사업 선정 이력”이라며 “후배 창업가를 사지로 밀어넣는 것은 아닌지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라고 전했다. “사업계획서를 써주면 100만~200만원을 받는다”며 “창업 컨설턴트의 상당수는 창업 실패자들”이라고 덧붙였다.
한 번 쓰러진 청년들은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서울경제신문이 만난 청년창업가들은 “한국에서 패자 부활은 불가능하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정부지원으로 재도전에 나섰던 선배 창업가들의 사례를 보면 이들의 비관적인 전망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정부와 공공금융기관은 지난 2010년 이후 신용이 불량한 재창업가에게 1억원 안팎의 자금을 대출해주는 등 재창업지원사업을 본격화했다. 하지만 7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성공 사례는 손에 꼽히는 정도다.
재기기업인협회 전 임원 김모씨는 “비슷한 시기 재창업에 나섰던 동료 기업인 중 절반은 사업을 접고 다시 신용불량자 신세로 전락했다”며 “그나마 살아남은 기업들도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를 정도로 숨만 겨우 쉬는 상태”라고 전했다.
창업가들이 이처럼 재기에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금융권에서 자금을 조달할 방법이 없어서다. 블랙박스 제조 및 유통 사업에 실패한 뒤 재기에 나선 김모(35) 대표는 “(나처럼) 파산면책을 신청한 실패 기업인들의 경우 은행권은 엄두도 낼 수 없다”며 “지인을 통해 대부 업체를 소개받아 한두 달 내에 갚는 조건으로 월이자 7%의 급전을 쓰는데 이자가 높다 보니 매출이 발생해도 이자 갚기에 급급해 악순환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푸념했다.
이러한 현실 탓에 재창업 기업인들은 ‘살고자 하면 죽는’ 역설이 존재한다고 입을 모은다. 회사가 생존하기 위해 신제품 투자와 영업 등에 나서면 그 사이에 빚이 늘어나 신용등급 악화와 자금난만 가중되는 결과를 낳는다는 얘기다.
김 대표는 “파산면책 후 부지런히 빚을 갚아 한때 신용등급이 1등급까지 올랐지만 신기술 개발 기간에 매출이 줄자 1년도 채 안 돼 신용등급이 7등급으로 내려가 제2금융권 이용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가 재창업자 94명과 예비재창업자 57명 등 15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84%가 자금조달 여건이 열악하다고 답했다. 재창업에 어려움을 겪는 문제로 응답자의 58.9%가 ‘자금조달 곤란’을 꼽았고 ‘신용불량으로 인한 금융거래 불가능’이라고 답한 비율도 23.2%에 달했다. 재창업 환경에 대한 만족도 역시 부정적인 답변(그렇지 않다 32.5%, 매우 그렇지 않다 24.5%)이 절반을 웃도는 57%에 달했다. ‘보통’으로 답한 비율은 27.2%로 조사돼 전체적으로 ‘보통 이하’ 평가가 80%를 넘었다. 긍정적인 답변(그렇다 10.6%, 매우 그렇다 5.3%)은 15.9%에 불과했다.
나이가 어린 청년창업가일수록 재창업 대신 취업 쪽으로 제2의 인생을 모색해보지만 이마저도 쉽지가 않다는 의견이 많다.
소셜검색분석 사업을 하다 5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는 임모 대표는 “개인파산을 하면 법원에서 면책조건으로 6개월에서 1년간 취업을 못 하도록 규정한다”며 “최근 잘나가는 글로벌 벤처기업이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 제의도 해왔지만 파산한 상태라 가지 못했다”고 푸념했다.
전직 창업가의 능력을 높이 살 만한 기업과의 매칭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최근 신사업팀 책임자로 실패 기업인을 공개채용했던 교육 업체 휴넷 관계자는 “창업 경험이 있는 30대 지원자가 대부분이었지만 우리가 진출할 분야의 경험이 없어 채용하지 않았다”며 “실패 경험이 있는 직원이 기업에도 큰 도움이 되지만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만나기는 아직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박진용기자 yong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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