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촛불 청구권’ 내세워 지난 1년간 친노동 정책을 향유해왔던 노동계가 친기업 정책으로 밥그릇을 뺏길 위기에 처하자 불만과 우려를 한꺼번에 표출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법학전문대학원의 한 교수는 “친기업 정책은 종국에는 노동 유연성 제고로 이어질 수 있고 노조가 다 잃어도 끝까지 지키고 싶어하는 게 바로 고용 안정성일 것”이라며 강경일변도의 노동계를 꼬집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이 정부의 기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또 다른 이유는 대통령의 최근 행보가 노무현 정부 당시의 기조 변화와 비슷해서라는 분석도 나온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최근 움직임은 규제 완화,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친기업 쪽으로 경도되고 있는데 ‘기시감’이 드는 게 사실”이라며 “노동계 내부에서는 문재인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 당시의 정책 기조 변경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친노동 정책을 표방하다 사실상 친기업으로 돌아섰다. 2005~2006년 통과된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등은 비정규직 근로자를 보호하겠다는 애초 취지와 달리 2년 미만 근로계약의 남발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노동계 입장에서는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셈이다.
지금까지 정부의 친노동 정책에 가속 페달을 밟아왔던 노조는 앞으로는 친기업을 비롯한 정부의 정책 변화에 브레이크를 걸고 나설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는 정부와 여당을 비롯한 국회가 최근 결정한 ‘주 52시간제 미준수 처벌 유예’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등도 일종의 친기업 정책 신호로 받아들이는 양상이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 맞서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와 노사정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정부의 친기업 정책이 가시화하면 실력 행사가 추가로 이뤄질 가능성도 크다.
전문가들은 노동계도 현 상황을 제대로 직시하고 소수의 기득권만 보호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지난 1년간 친노동 정책을 편 결과가 고용 쇼크”라며 “노조도 이제 기득권을 버리고 무엇이 진정 근로자를 위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야 하며 기업의 일자리 창출을 유도하는 친기업 정책이 결국 친노동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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