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유럽연합(EU)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방위비를 둘러싸고 말폭탄을 주고받으면서 나토 정상회담이 열리는 벨기에 브뤼셀이 미국과 EU간 또 다른 갈등의 장이 되고 있다. 반면 나토 정상회의에 이어 헬싱키에서 정상회담을 열 예정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서는 “적인지 친구인지 지금 당장은 말할 수 없다”며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을 시사하는 발언을 남겼다. 트럼프 대통령이 EU와는 무역에 이어 안보에서마저 균열양상을 보이는 한편 나토의 적국인 러시아에 대한 묘한 발언을 남기면서 유럽 정가에서는 이번 유럽 순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또 한차례 국제질서를 뒤흔들어놓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외신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1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10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 도착한 직후 트위터에서 “나토의 많은 나라가 2% 지출이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을 뿐 아니라 수년간의 미지급 비용 연체 상태에 있다”며 “그들이 미국에 갚을 것인가”라고 EU 국가를 향해 십자포화를 날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2% 지출’이란 나토 회원국들이 지난 2014년 방위비 분담금을 10년 내 각국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으로 올리기로 합의한 가이드라인을 의미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서양동맹 파기 가능성까지 내비치며 EU 동맹국에 2014년 합의를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나토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방위비 지출은 3.57%에 달하는 반면 나머지 회원국들은 평균 1.45%에 그친 것으로 추정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브뤼셀로 출발하기 직전에도 트위터를 통해 “미국은 EU와의 무역에서 1,510억달러(약 169조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들(EU)은 미국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무역장벽을 세우고 있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우방인 미국이 안보 위협을 이유로 유럽산 철강에 관세 폭탄을 투하한 데 이어 공동 안보기구인 나토가 미국에 국방비 부채를 진 것처럼 비난수위를 높이자 결국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총대를 멨다. 투스크 의장은 이날 나토와 EU 간 협력강화 협정을 체결한 뒤 회견에서 “미국은 유럽보다 더 좋은 동맹을 갖고 있지 않고 앞으로도 갖지 못할 것”이라면서 “오늘 유럽은 러시아보다 훨씬 많이, 그리고 중국만큼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해 “동맹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그렇게 많은 동맹을 갖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투스크 의장은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6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적국인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단독 정상회담을 여는 것을 의식해 “트럼프 대통령이 내일 나토 정상회의에서 만날 때, 무엇보다 헬싱키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동할 때 이것을 기억해주기 바란다”면서 “누가 전략적인 친구이고 전략적인 골칫거리인지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된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출국 전 푸틴 대통령에 대해 “적인지 친구인지 지금 말할 수는 없지만 그는 경쟁자”라며 “(이번 순방에서 만나는 사람 가운데) 솔직히 푸틴 대통령이 가장 쉬운 상대”라고 말했다.
미 ABC방송은 “EU 동맹국들은 지난달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족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목격했다”며 “국내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독일·영국·프랑스 등 나토 주요국가와 미국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더욱 불안한 관계만 확인할 것”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1~12일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12~15일 영국을 거쳐 16일 헬싱키에서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연다. /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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