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등지고 푸틴 편에 섰다.”
16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첫 단독 정상회담을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내에서 ‘반역’ 논란에 휩싸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지난 2016년 대선 때 러시아의 개입 없이 승리했다는 입장을 부각하려 했지만 오히려 잠잠하던 트럼프 선거캠프와 러시아 간 공모 의혹에 불을 붙이며 거센 역풍을 맞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핀란드 헬싱키에서 개최된 미러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가 지난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는 미 정보당국의 결론을 부인하는 듯한 발언을 하자 미국 내 여론은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비판을 쏟아냈다. 뉴욕타임스(NYT)는 “푸틴 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정보당국에 문제를 제기했다”며 “러시아의 대선 개입을 부인하는 놀라운 광경이었다”고 지적했다. NYT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트럼푸틴 vs 미국’이라는 칼럼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오늘 미합중국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취임선서를 버렸다”고 강한 어조로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대선 개입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아니라고 했다. 러시아는 개입할 이유가 없다”고 말해 러시아가 대선에 개입했다는 미 중앙정보국(CIA) 등 정보당국의 확정발표를 무시하고 러시아 측에 힘을 실어줬다.
이에 대해 존 브레넌 전 CIA 국장은 “트럼프의 헬싱키 기자회견은 ‘중범죄와 비행’의 문턱을 넘어섰다”며 “반역적인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친트럼프 성향의 폭스방송도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의 발언은 그냥 잘못된 것”이라고 혹평했다.
특히 야당인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편에 선 것이 ‘어떤 약점을 잡혔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며 청문회 개최를 요구했다.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푸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나쁜 정보를 가졌을 가능성이 있는지 많은 미국인들이 궁금해할 것”이라며 청문회를 열어 백악관 안보팀의 증언을 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 등 공화당 지도부도 일제히 비판성명을 내고 “러시아가 우리 선거에 개입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러시아는 미국의 기본가치와 이상에 적대적”이라고 강조했다.
엄청난 여론의 반발에 트럼프 대통령은 귀국 비행기에서 곧장 꼬리를 내렸다. 그는 트위터에 “여러 번 말했듯이 우리 정보기관에 대해 대단한 신뢰를 갖고 있다”면서 “더 밝은 미래를 만들려면 과거에만 집중할 수는 없다”고 주장해 자신은 미래를 위해 푸틴 대통령에게 호의적으로 발언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를 공개적으로 두둔하면서 크림반도 병합 등 민감한 이슈는 언급도 하지 않자 유럽에서는 미러 유착에 따른 대서양동맹 악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카를 빌트 전 스웨덴 총리는 이번 회담과 관련해 “트럼프가 러시아의 (안보 위협) 행위를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익명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고위 외교관도 워싱턴포스트(WP)에 “미국은 약하게 보였고 이는 푸틴을 대담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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