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명의 귀한 생명을 앗아간 해병대 상륙기동헬기 마린온 추락사고의 배경에는 현실에 맞지 않는 제도와 고질적인 ‘빨리빨리’ 관행이 도사리고 있다. 문제는 다른 국산 무기들도 똑같은 환경에서 개발되고 운영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소형무장헬기(LAH)나 한국형 차기전투기(KF-X) 개발도 사업구조나 기술 도입선 등이 국산기동헬기 수리온과 비슷하게 진행되고 있다. 헬리콥터의 등장 이래 사상 초유로 꼽히는 이번 사고의 의미와 개선점을 짚어봤다.
◇이륙 직후 주날개 분리 사고는 사상 초유=이번 참사와 비슷한 사고가 유럽에서도 일어난 적이 있다. 지난 2016년 4월 노르웨이의 해상 플랫폼에서 발진한 헬기가 지상에 접근하던 중 주날개(메인 로터)가 분리되며 탑승자 16명 전원이 사망했다. 사고 기종은 슈퍼 퓨마로 수리온 헬기의 아저씨뻘 헬기다. 수리온이나 슈퍼 퓨마의 원형은 퓨마헬기로 수리온은 구형 퓨마헬기의 최종 발전형에 해당한다.
비슷한 헬기가 비슷한 사고를 냈지만 마린온 참사처럼 이륙 직후 주날개가 아예 떨어져 나가는 사고는 1947년 미국에서 헬리콥터가 우편배달 업무에 투입된 이래 71년 만에 처음이다. 마린온 헬기는 항공사에 오점 사례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왜 추락했을까=사고는 희생자들이 대처할 틈도 없이 짧은 순간에 일어났다. 항공전문가 G 연구원은 “주날개의 구동축(메인 샤프트)은 어떤 헬기나 정비할 때 빠지게 설계된다”며 “구동축 안에 사람 주먹 크기의 결속핀으로 고정되는데 운항 중 안전핀이 빠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애초에 4엽의 날개(메인 블레이드) 가운데 한 개가 먼저 떨어져 나가고 곧이어 남은 날개 3개가 구동축과 함께 빠졌다. 추락 직후 조종사석 밑바닥에 있는 항공유가 기업 박스의 불통과 합쳐지고 화재가 발생했다. 시신만으로는 누가 누군지 모를 정도의 짧은 시간에 기체가 타버렸다. 게다가 항공유는 발화점이 낮아 화재에 취약한 편이다. G 연구원은 “사고 원인을 추정하기는 이르지만 날개의 분리는 결국 날개의 밸런스(균형)가 안 맞았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진동으로 인해 안전핀이 빠졌든, 정비 불량이든 날개 간 균형 붕괴에서 원인을 찾아 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책임 소재는=사고 원인은 조종 과실과 설계 및 기체 결함, 그리고 정비 과실 등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조종 과실은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조종사가 베테랑인데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이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기체 결함과 정비 과실인데 둘 다 제작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책임이 있다. 사고 기체는 KAI가 지난해 말 해병대에 넘겨 비행시간이 153시간에 불과한 신품이었으며 KAI 소속 인력 16명이 정비를 맡아왔기에 KAI가 책임을 져야 할 가능성이 높다. KAI는 오는 2023년까지 정비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해병대 장병들 사이에서 유독 2호기의 정비 소요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진 대목도 조사위원회의 규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원인 규명에 얼마 걸리나=방산업계 관계자는 최소한 3개월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현장에서 수거한 각종 파편의 상태와 피로도 등을 전자현미경으로 정밀 점검하고 사고 상황을 시뮬레이션을 통해 규명하는 데만 3개월이 걸린다’는 것이다. 방산업체의 다른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보통 1년 정도가 소요된다”며 “노르웨이에서 발생한 슈퍼 퓨마 추락 사고 조사에는 2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수리온 계열 헬기는 한국에서만 생산되는 헬기여서 조사 기간이 이보다 더 길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이 ‘신속하되 제대로 된 사고 원인 규명’을 강조해 조사 결과 발표가 외국 사례보다 빨라질 수도 있다.
◇청와대의 ‘수리온 감싸기’?=사고 직후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의 ‘수리온 헬기의 성능과 기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논평이 논란을 불렀다. 필리핀 수출(11대)뿐 아니라 다른 동남아 국가의 수출 건이 달려 있기 때문으로 알려졌지만 야당은 물론 유족들의 반발을 불렀다. 청와대는 또 사고 동영상 공개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수리온 감싸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문을 낳고 있다.
◇조사위 구성 객관성 논란=사고 직후 해병대는 원인 규명을 위해 육군과 해군·공군·기술품질원 등으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했으나 불과 하루 뒤 기술품질원을 제외시켰다. 유족들이 수리온 헬기 개발과 테스트에 참여한 기술품질원이 조사위에 들어오면 ‘이해 상충’의 가능성이 있다고 배제를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해병대는 유족들이 추천하는 민간 전문가를 조사위에 초빙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다른 논의도 나온다.
수리온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제작사의 배제는 물론 시험 평가 업무를 맡은 기술표준원까지 빠지는 조사위원회라면 역으로 편향된 결정을 내릴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해병대를 비롯해 육군도 수리온을 내심 못마땅하게 여겨왔기에 조사위원회가 ‘피해자 조사위원회’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수리온 헬기를 가장 많이 아는 제작사나 품질 검증기관이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은 조사위가 편향된 결정을 내리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낳고 있다. 해병대는 이에 대해 “필요하다면 외국 전문가도 초빙해 투명하고 객관적인 원인 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국적 부품 헬기, 예견된 사고?=수리온은 국산 고유모델로 홍보돼 왔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유럽의 설계도를 조금 수정하고 핵심 부품은 세계 각국에서 끌어모은 다국적 헬기라고 할 수 있다. 사고 발생 당시 동체에서 떨어져 나간 주날개는 KAI가 설계해 국산부품을 사용했다. 국산부품 상용화 정책에 따라 수리온에는 핵심부품을 제외하고 국산부품이 60여% 들어갔다는 것이 업체 측의 설명이다.
엔진의 동력을 로터 블레이드에 전달하는 기어박스는 옛 유로콥터사 제품이다. 한국의 기술력이 부족한데다 유럽 측에서 기어박스 기술협력 생산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경남 고성군에서 시험비행 도중 이상 신호가 발생했던 자동진동저감장치는 국산 제품. 사고 마린온은 시험비행 직전 기체가 심하게 떨리는 진동 현상으로 KAI 측이 참가한 가운데 정비가 이뤄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이상 징후가 감지된 적이 있는 이 장치에 대한 문제점이 완전히 해결됐는지 검증이 필요한 대목이다.
핵심 부품인 엔진은 미국 제품인 ‘T-700 터보 샤프트’. 유럽 도면에 미국 엔진을 장착해 조화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개발 단계에서 방위사업청은 ‘출력이 우수하고 우리 군이 운용하는 UH-60 헬기 엔진과 같다’는 이유로 이 엔진을 선정했으나 작고 가벼운데 출력이 좋은 이 엔진이 기체와 맞지 않아 진동의 원인이 됐는지도 밝혀야 할 대상으로 지목된다. 각양각색의 부품으로 구성된 수리온과 마린온에 정품을 사용했는지, 도면과 일치한 규격의 부품을 사용했는지 등도 조사 대상이다.
◇다른 무기 체계는 이상 없을까=더 큰 문제는 제2, 제3의 사고가 다른 국산무기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개발기간이 짧고 시험평가에는 인색한 구조, 최저가 입찰로 성능이 떨어질 수 있는 부품이 사용될 가능성이 여전한 탓이다.
항공기의 핵심 부품을 다국적으로 삼는 방식은 민수겸용 LAH 사업에서도 그대로 준용되고 있다. 이 헬기도 유럽 기체가 원형이다. 단군 이래 최대 무기획득사업으로 꼽히는 KF-X의 사업 양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체 설계는 우리가 맡고 엔진은 미국제, 레이더는 이스라엘과 유럽의 기술을 도입하며 핵심 체계 통합기술 역시 미국의 기술 이전 거부로 유럽 기술을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이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주요 국산무기의 양산 결정 이전에 충분한 시험평가를 거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권홍우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