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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룡리 전원일기<9> 멧돼지라구요?

집 근처 밭에 '멧돼지 출몰' 의심

주인 아저씨는 '포획' 민원 제기

사냥꾼은 밤에 매복하며 기다려

끝내 총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푹푹 찌는 어느 여름날 오후.

텃밭에서 뽑은 잡초들을 풀숲이 우거진 곳에 버리고 내려오는데 아저씨가 손짓을 한다. 평소 인사하고 지내며 요즘처럼 더울 땐 얼음 동동 띄운 오미자차도 대접해 드리는 분이다. 여느 때처럼 땀방울이 송송 맺힌 얼굴은 무슨 작업을 막 끝내고 온 모습이었다.

“다른 게 아니고 저번에 멧돼지가 내려와 고구마밭 헤집어 놨다고 했잖아. 도저히 안 되겠어. 면사무소에 가서 민원 넣었어. 멧돼지 잡아달라고.”

“멧돼지요?”

“응. 관내 등록된 포수가 2명 있는데 한 명은 지금 총을 꺼낼 수 없는 상황이고 다른 한 명만 활동 가능하다네. 조금 전에 와서 이곳 지형 대략 확인하고 밤에 다시 온다네.”

“근데 멧돼지가 이 더운 날에도 내려와요”

“예전엔 없었는데… 발자국 난 거 보니깐 크기가 다르더라고. 새끼들도 같이 내려왔나봐”



지난 겨울에도 트랙터로 갈아놓은 듯 밭을 뒤집어 놓은 적이 있었다고 했다.

영화 ‘곡성’에 나오는 시골 풍경과 흡사해 보이는 모습. 주택과 밭 사이는 불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다. 짙은 숲속 어딘가에 멧돼지가 숨어있다는데...


500평 남짓한 밭을 손수 혼자 가꾸는데, 식당 하는 동생네 집에 가져다 줄 옥수수 수확을 앞두고 신경이 많이 쓰이시는 모양이다.

당연히 허가된 사냥꾼의 총으로 잡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럼 멧돼지는 어떻게 잡아요”라고 물었다. 모자를 푹 눌러쓴 아저씨는 “이번 여름은 유난히 진드기가 많아 사냥개를 풀어 잡기는 힘들다”며 “포수가 밤에 밭 주변에 매복하고 있다가 멧돼지가 나타나면 잡을 계획을 세웠다”고 앞산을 넌지시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아저씨가 날 부른 목적은 혹시 밤에 총소리가 들릴지 모르니 주변 사람들한테도 이 사실을 알려달라는 것이다. 모두 잠든 사이 총소리가 나더라도 놀라지 말라는 당부였다.

유해 조수로 등록된 멧돼지 활동으로 요즘도 하루에 6~7건 민원이 들어온다고 했다. 겨울엔 무밭을, 여름엔 채 열리지도 않은 고구마 줄기를 먹는단다. 여름철 한창인 옥수수는 그들의 주메뉴인 셈이다.

주택과 밭 사이는 불과 10m정도 남짓. 멧돼지가 밤에 나타나 집 근처 텃밭까지 접근하면 위험하다고 한다. 새끼들과 함께 어른 멧돼지는 지금도 뒷산 어딘가에 숨어 있다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숲속은 아무 말이 없다. 정말 포수가 사냥에 나선다면 어린 멧돼지 목숨까지 앗아 갈 것이다. 고라니도 잡아야 한다는 아저씨의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무릇 생명이란, 유해동물이라 하더라도 인간이 그 ‘숨’을 끊을 권리가 있는지 모르겠다.

아저씨 말씀대로 밤까지 기다렸지만, 그날 총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최남호기자 yotta7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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