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23일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드루킹’ 김동원(49)씨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파헤치는 허익범 특별검사팀의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특검팀 수사의 ‘지류’라 할 수 있는 노 원내대표 불법 정치자금 수사가 그의 사망이라는 돌발 상황으로 동력을 잃게 되면서 이번 수사의 ‘본류’인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 정치권의 댓글조작 연루 의혹 수사에도 난항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검팀은 애초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받는 노 의원을 시작으로 김 지사 등으로 수사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었다. 특검팀은 본류 수사를 계획대로 진행할 방침이지만 법조계 안팎에서는 앞으로 특검이 수사계획 전면 수정 등 후폭풍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이날 오전9시38분께 경비원 신고로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 현관 앞에서 쓰러져 숨진 노 원내대표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해당 아파트는 노 원내대표의 자택이 아닌 어머니와 남동생 등 가족이 사는 곳이다. 경찰은 아파트 17~18층 계단에서 노 원내대표의 외투를 발견했다. 또 그 안에서 지갑, 신분증, 정의당 명함, 유서로 추정되는 문서를 찾아냈다. 유서에는 “드루킹 관련 금전을 받은 사실은 있으나 청탁과는 관련이 없다” “가족(妻)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특검팀은 노 원내대표의 사망 소식에 당황하는 모습이다. 노 원내대표는 드루킹의 측근이자 본인과 경기고 동창인 도모 변호사, 드루킹이 이끈 인터넷카페 ‘경제적공진화모임’으로부터 각각 5,000만원의 정치 후원금과 2,000만원의 강의료를 받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었다. 특검은 금품 거래 관련 진술과 자금내역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노 원내대표나 측근 등에 대한 소환조사 시도가 없었던 만큼 그의 극단적인 선택은 예상 밖이라는 반응이다. 앞서 노 원내대표도 “어떤 불법적인 정치자금도 받은 적이 없다”며 특검 수사에 당당히 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허 특검은 이날 노 의원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곧바로 긴급 브리핑을 열어 “침통한 심정으로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깊은 유감을 표했다. 또 “정치사에 큰 획을 그었고 의정활동에 한 페이지를 장식한 노 의원의 행적을 먼 거리에서 바라봤다. 개인적으로는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다만 수사계획 등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특검팀은 노 의원 사망 소식에 애도의 뜻을 표하면서도 ‘기존 수사는 이어간다’는 입장이다. 특검팀 관계자는 이날 “공여자 측인 드루킹과 관련된 수사는 계속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드루킹 의혹과 관련한 수사는 초기 패턴과 다르게 앞으로 심도 있게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당초 이번 수사의 본류였던 김 지사 등 정치권의 댓글조작 연루 및 불법 정치자금 의혹에 수사력을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특검이 이날 도 변호사에 대한 소환 조사를 취소하면서도 김 지사의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인 한모(49)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두 번째로 불러 조사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씨는 지난해 9월 경기도의 한 식당에서 경공모 핵심회원 ‘성원’ 김모(49)씨, ‘파로스’ 김모(49)씨와 만나 500만원을 수수하는 등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는 인물이다.
하지만 법조계 안팎에서는 앞으로 특검 수사가 다소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수사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사고가 발생한 만큼 특검팀의 행보가 한층 제한될 수 있어서다. 특히 수사의 본류가 아닌 노 의원을 둘러싼 수사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터진 터라 자칫 핵심 수사영역인 드루킹과 김 지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 수사도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사태를 어떻게 수습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수사가 정치권 전반으로 확대될지, 위축될지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조사 과정에서 피의자나 참고인이 자살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수사팀은 당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이는 법적 문제를 떠나 도의적 책임 등 심리적 부담이 가중되는 데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수사팀뿐 아니라 앞으로 수사를 받을 참고인이나 피의자들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안현덕·신다은기자 alwa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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