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조짐은 이미 국내 거시통계에서도 나왔다. 4월부터 반도체 경기의 선행지표인 관련장비 수입이 하락세로 돌아서더니 5월에는 산업생산마저 뒷걸음질쳤다. 급기야 해외 분석기관에 이어 국내 증권가마저 실적이 꺾일 것이라는 경고음을 울렸다. 메리츠증권은 4·4분기 D램 가격 하락폭이 5~6%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면서 D램 시장이 올해 말~내년 초 공급과잉 상태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철강과 조선 등 주력 제조업이 부진의 늪에 빠진 가운데 반도체 산업마저 흔들린다면 우리 경제에는 설상가상이다. 반도체는 특정 업종 차원을 넘어 우리 경제의 성장과 수출 등 여러 측면에서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 반도체가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를 웃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은 전체 코스피 상장사의 절반에 육박한다. 우리 경제가 겉으로는 멀쩡하게 보이는 것도 이 같은 반도체 착시현상에 기인한 바가 크다.
우리가 한눈을 파는 사이 중국 반도체 산업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무서운 속도로 치고 올라오고 있다. 중국은 연말부터 낸드플래시를 필두로 반도체를 쏟아내게 된다. 중국이 저가물량 공세에 나서면 국제시세가 얼마나 더 떨어질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중국의 제조업 굴기로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주력산업이 어떻게 됐는지를 되돌아본다면 끔찍하기만 하다. 이제는 반도체 리스크를 상수로 놓고 경제운용의 틀을 짜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반도체 착시에 가려진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고 성장 잠재력을 키울 구조개혁과 신산업 육성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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