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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탄금대 굽이도는 남한강따라 가야금 선율 흐르네

■우륵의 예술혼 서린 충주

가야 등지고 신라로 망명한 우륵

솔숲 탄금대서 亡國의 설움 달래

지금은 남한강 조망 명소 떠올라

통일신라의 중원 상징 '칠층석탑'

단양팔경 등 유람선 투어도 만끽

‘탄금대’를 찾은 여행객이 열두대 위에서 경치를 감상한 뒤 나무 데크길을 따라 걸어 올라오고 있다.




‘탄금대’를 찾은 여행객이 나무 데크길을 따라 걸어 올라오며 경치를 감상하고 있다.


소설가 김훈의 2004년작 ‘현의 노래’는 가야국의 궁중 악사였던 우륵의 생애를 그린 작품이다. 유려한 문체 속에 인간사의 쓸쓸한 섭리를 담은 이 소설에서 우륵은 조국인 가야가 쇠락하자 신라로 망명한다. 대가야 가실왕의 명을 받고 ‘가야금’이라는 악기를 만들었던 우륵은 앞날이 불투명한 조국을 등지고 신라의 장군 이사부 앞에 무릎을 꿇은 뒤 이렇게 간청한다. “신라가 가야를 멸하더라도 신라의 땅에서 가야의 금을 뜯을 수 있게 해주시오. 주인 있는 나라에서 주인 없는 소리를 펴게 해주시오.” 이사부의 배려로 목숨을 부지한 우륵은 낭성(娘城·오늘날의 충북 청주)의 민가에 살다가 지방 행차에 나선 진흥왕이 군사들을 위해 베푼 연회에 악사로 참여할 기회를 얻는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소리뿐이었던 이 예인(藝人)은 왕이 보는 자리에서 가야금 한 곡조를 구성지게 뽑아 올렸다. 우륵의 연주에 깊은 감명을 받은 진흥왕은 “너는 이제 낭성을 떠나서 국원(國原)으로 가라. 삼한의 중심인 국원에 살면서 너의 소리를 과인의 나라의 소리로 키워라”고 명했다.

당시 나이 일흔이 넘은 노인이었던 악사 우륵이 진흥왕의 지시로 새롭게 삶의 터전을 일궜던 국원이 바로 오늘날의 충청북도 충주다. 현재 관광 명소로 꾸며진 충주시 칠금동에 위치한 탄금대(彈琴臺·명승 제42호)는 우륵이 울창한 소나무 숲과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을 배경 삼아 가야금을 연주하며 노년의 생을 보낸 곳이다. 해발 108m의 야트막한 대문산에 자리 잡고 있으며 탄금대라는 명칭 역시 우륵이 가야금을 타며 소일한 곳이라는 데에서 유래했다. ‘우륵 선생 추모비’와 ‘충혼탑’ 등을 지나 왼편으로 빙 돌아 나가면 탄금대의 인증 샷 포인트인 ‘열두대’가 나온다. 초록빛 여름 향기를 발산하는 나무들 사이로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흘러가는 남한강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뷰포인트’다. 1,400여년 전 우륵은 이곳에서 그저 혼자 속으로 조국을 그리워하며 무의미한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진흥왕은 충주에 머물던 우륵에게 ‘계고’ ‘법지’ ‘만덕’이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을 보내 가야금과 노래를 가르치도록 했다. 가야의 멸망을 직감한 우륵이 조국을 등진 것은 흔들림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눈물겨운 선택으로 우륵은 ‘신라’라는 든든한 울타리를 방패 삼아 후학들에게 재능을 전수하며 자신의 이름과 예술을 역사에 아로새길 수 있었다. ‘현의 노래’를 쓴 김 작가는 이를 두고 “우륵은 적국에 가서 음악으로 적국을 지배하고 조국의 이름을 붙여 후세에 남겼다”고 명쾌하게 정리했다.

통일신라 시대에 세워진 ‘탑평리 칠층석탑’.




여행객들이 충주나루에서 출항하는 유람선을 타고 관광 명소를 둘러보기 위해 탑승 준비를 하고 있다.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한 충주는 삼국시대부터 신라·고구려·백제가 서로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세력 다툼을 벌인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충주에는 신라뿐 아니라 삼국의 문화가 골고루 남아 있다. ‘충주 고구려비(국보 제205호)’는 현존하는 국내 유일의 고구려 석비로 장수왕의 손자였던 문자왕이 남한강 유역의 여러 성을 공략해 차지한 할아버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라 추정된다. 이 비석은 지난 2012년 문을 연 ‘충주 고구려비 전시관(충주시 가금면 용전리 280-11)’이 보관하고 있다. 고구려비 전시관에서 3㎞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탑평리 칠층석탑(국보 제6호)’도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코스다. 높다란 토단(土壇) 위에 당당히 솟아 있는 탑평리 칠층석탑은 통일신라 시대에 나라의 한복판임을 표시하기 위해 세웠다고 전해진다. 충주에는 지금도 이 석탑을 ‘중앙탑’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은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서기 8세기 후반~9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전형적인 통일신라의 3층 양식과 달리 2중 기단 위에 7층의 탑신을 올리고 그 위에 상륜부를 구성했다.

충주댐과 월악산·단양8경 등 여러 지역 명소를 빠르게 둘러보려면 ‘충주호 관광선’을 타면 된다. 배 선착장은 충주나루·월악나루·청풍나루·장회나루 등 4곳이 있고 코스별 시간은 30분, 1시간부터 2시간~4시간대까지 다양하다. 같은 코스라도 이용객의 숫자나 날짜에 따라 운항 시간이 달라지니 선착장으로 가기 전 미리 전화(043-851-7400)로 확인하는 것이 좋다. /글·사진(충주)=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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