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BOJ)이 양적완화 정책 수정을 검토한다는 설에 일본 장기국채 금리가 급등하는 등 글로벌 채권 시장이 불안에 노출된 모습이다. BOJ가 통화정책 수정을 검토하는 것은 바닥 수준의 금리가 지속할수록 은행 등 금융권의 위기가 심각해지기 때문이어서 시장은 사실상 ‘양적완화 졸업’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BOJ로서는 디플레 위기에 통화정책을 수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시장까지 요동치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진 상황이다.
28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BOJ는 전날 국채 금리를 안정화하기 위해 지정가에서 무제한으로 국채를 사들이는 ‘매입 지정가’를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전날 일본 10년물 국채 금리가 0.105%로 약 1년 만에 최고치로 상승하자 이를 억제하기 위해 돈을 풀기로 결정한 것이다. BOJ의 10년물 국채 목표 금리는 0.00%다.
일본 국채 금리는 지난 23일부터 꾸준히 오르고 있다. 지난 26일에도 도쿄 채권시장에서 10년물 국채금리는 장중 한때 0.100%까지 올랐다. 지난주까지 0.030% 전후의 흐름을 보였던 장기금리 수익률이 이번 주 들어 급등한 것이다.
장기금리 급등은 최근 BOJ가 금융완화 정책의 부작용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관측이 나온 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일 로이터통신은 BOJ가 30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양적완화 정책의 부작용 경감대책을 논의한다고 보도했다. 현재 0% 근방에 머물고 있는 10년물 국채금리를 일정 수준 끌어올리는 수준의 통화정책 ‘유연화’가 거론되는 가운데 국채와 상장지수펀드(ETF) 등 자산매입 방법을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BOJ 관계자는 로이터에 “낮은 물가상승률의 배후에 구조적인 요인이 있다면 정책을 보다 지속 가능하게 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며 “점차 늘어나는 경기완화책의 비용을 무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는 2013년 취임 당시 2년 안에 물가상승률 2%를 달성해 ‘잃어버린 20년’의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겠다며 막대한 양의 ‘돈 풀기’ 정책에 착수했다. 하지만 유례없는 통화완화에도 물가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오히려 BOJ의 대규모 자산매입이 시장 유동성을 고갈시키고 가격을 왜곡한다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만 커졌다. 특히 BOJ가 2016년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자 금융사들의 영업환경이 날로 악화하면서 완화정책에 대한 반발이 쏟아졌다. 로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일본 시중은행의 절반 이상이 핵심 대출 및 수수료 사업에서 손실을 봤다.
하지만 시장은 BOJ의 양적완화 수정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유럽중앙은행(ECB)에 이어 BOJ까지 긴축 행렬에 동참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당장 3개 선진국 중앙은행이 긴축에 돌입하는 것이다. 글로벌 채권시장도 출렁이고 있다. 앞서 25일(현지시간) 미국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2.60bp(1bp=0.01%포인트) 오른 2.9769%를 기록해 3%에 바짝 다가섰으며 2년 만기 국채금리는 4.02bp 상승해 2.6733%를 나타냈다.
BOJ는 연일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보도를 부인하며 당혹스러운 눈치를 숨기지 않고 있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BOJ가 단기간에 통화정책을 수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팽배했다. 여전히 물가가 바닥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물가가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면 엔화가치가 급등하면서 경기를 냉각시킬 우려가 있는 것은 물론 디플레이션 탈출이라는 아베 신조 일본 정권의 목표 달성이 더욱 요원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일 발표된 일본의 6월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는 0.8% 성장에 그쳤다. 특히 가격 변동이 심한 신선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물가성장률은 전년 동월 대비 0.2%로 3개월 연속 둔화됐다. 이는 8개월 만에 최저치다.
이 때문에 BOJ가 실제로 통화정책을 수정하게 되면 글로벌 채권 시장의 변동성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거시경제 조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의 양적완화 수정은 앞으로의 통화정책에 대한 시장의 의문을 자아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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