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18년 8월26일, 카스피해의 항구도시 바쿠를 둘러싸고 영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과 독일·오스만튀르크 동맹군 간 치열한 전투가 치러졌다. 혁명으로 니콜라이 2세를 폐위시킨 러시아가 내치를 위해 바쿠에서 물러난 틈을 타 이 지역을 서부전선의 교두보로 삼으려던 독일은 결국 19일 만에 바쿠를 함락시켰다. 하지만 바쿠 전투의 승리는 역설적으로 두 달 보름 후 독일이 전쟁에서 패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연합군이 철수하면서 바쿠의 유정을 대부분 파괴하면서 유전을 확보하려던 동맹군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고 서부전선의 전력이 크게 약화한 탓이다.
독일이 이처럼 바쿠에 집착했던 것은 카스피해 연안에 풍부하게 매장된 석유·천연가스 등의 지하자원이었다. 남한 면적의 네 배에 달하는 37만1,000㎢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호수’로 불리는 카스피해에는 현재까지 확인된 양만 280억배럴의 원유와 6조5,600억㎥의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카스피해의 영유권은 주변 국가들을 연방으로 편입시킨 옛 소련과 이란의 손에 넘어갔다. 이후 70여년간 조용했던 카스피해가 다시 영유권 분쟁에 휩싸인 것은 1991년 소비에트연방의 붕괴 때문이다. 연방에서 독립한 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아제르바이잔이 저마다 카스피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30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카스피해 연안 5개국 간의 분쟁은 ‘카스피해(海)-카스피호(湖)’ 논란으로까지 이어졌다. 바다냐 호수냐에 따라 각국의 영유권 범위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카스피해는 사방이 모두 육지로 둘러싸여 있어 모양은 호수에 가깝지만 짠맛이 나는 물인데다 엄청난 면적 탓에 공식 명칭도 ‘카스피해’로 불린다.
이란과 러시아의 입장은 ‘호수’라는 입장이다. 호수로 인정되면 5개 국가가 카스피해에서 나는 엄청난 양의 지하자원을 공평하게 나눠 갖게 된다. 반면 바다로 정의하면 육지에서 12해리까지 자국 영해로 인정된다. 연안에 석유와 천연가스 자원이 몰려 있는 아제르바이잔·투르크메니스탄·카자흐스탄이 카스피해를 ‘바다’라고 주장하는 배경이다.
다음달 12일에 카스피해의 법적 지위를 확정하기 위한 국제회의가 카자흐스탄 악타우에서 열린다고 한다. 이번 회의가 지난 30년 가까이 계속된 바다·호수 논쟁을 마무리 지을 수 있을까.
/정두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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