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기주에게는 늘 ‘엄친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배우가 되기 전, 대기업에 입사하고 기자로 활동했던 전적 때문. 취준생들의 곡소리가 나날이 커져 가는 요즘 시대에 직업을 두 번이나 바꾼 그는 또래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스스로가 돌아본 그의 삶은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많은 이들이 부러워한 성공 뒤에는 홀로 감내해야 했던 실패와 좌절이 있었다. ‘이리와 안아줘’ 최준배 PD가 길낙원 역에 진기주를 캐스팅한 것 역이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진기주는 아무도 봐주지 않았던 이면을 봐준 최준배 PD의 한 마디에 감동을 느꼈다.
“‘이리와 안아줘’에 캐스팅되고 어떤 분이 감독님께 ‘진기주는 그동안 실패를 모르고 살았던 인생인데 힘든 감정을 알겠냐’고 하셨다. 그런데 감독님이 ‘오히려 실패만 했던 인생이다. 그 직업들을 거치면서 느꼈을 좌절감이 얼마나 컸겠냐’고 말씀해주셨다. 그때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합격 뒤에는 수많은 불합격들이 있었고 그 안에서 느꼈던 고민과 고통도 많았다. 그런 면을 봐주신 건 감독님이 처음이었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그만두고, 27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배우의 길로 뛰어들었다. 현실 앞에서 고민하던 그를 움직이게 한 건 단 한 순간의 결정이었다. 포기와 도전, 그 어려운 걸 두 번이나 해냈음에도 그는 자신이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고민을 시작할 때부터 어머니는 ‘그냥 그만둬. 다시 취업하면 돼’라고 하셨다. 나는 수많은 불합격을 거치고 겨우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오히려 ‘취업이 얼마나 힘들지 아냐’며 엄마를 말릴 정도로 나는 용기가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바뀌고 반년을 끙끙 앓았다. 단호해지는 건 순간이더라. 조금만 더 지체하면 더 이상 고민도 못 할 만큼 늦어버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늦기 전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바로 실천에 옮겼다.”
연기를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어릴 때부터 드라마와 영화를 좋아했고 TV 속 배우들을 동경해왔다. 먼 길을 돌아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그는 “이제 직업을 바꿀 일은 없다”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어릴 때 ‘대통령이 꿈이에요’ 하는 것처럼 막연한 동경이었다. 다른 일을 하면서도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나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게 좋다. 새로운 작품과 캐릭터를 만나는 것도 설렌다. 물론 스트레스도 받는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과물은 내 손을 떠난 느낌이 있어서 평가에 대해 겁이 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들이 재밌다.”
출발은 남들보다 늦었을지 몰라도 빠른 성장을 보이며 데뷔 3년 만에 주연 배우로 우뚝 섰다. 배우로서 분명한 매력을 지녔다는 증거다. 볼수록 궁금해지고 볼 때마다 편안해지는 배우, 진기주가 가진 매력은 그가 배우로서 꾸는 꿈과도 맞닿아있었다.
“데뷔 초에 작품을 할 때 감독님들이 지금의 순수한 모습을 끝까지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오디션을 볼 때도 감독님들께서 공통적으로 해주시는 말이 ‘기분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그게 화면 밖에서 느껴지면서 편안하게 봐주시는 것 같다. 대중이 작품을 고를 때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연기가 궁금해지는, ‘보고 싶은’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
/김다운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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